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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May 25. 2022

아이를 언제 책임질 건가요?

부모파업

지금 초등학교 앞 큰길로 나가봐 주세요.
민숙이가 길거리에서 어떤 애랑 싸우고 있다고 전화가 왔어요.
지금 가게에 손님이 있어서 바로 나갈 수 없어요.
센터에서 큰길이 가까우니까 먼저 가 있으면 내가 금방 갈게요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사람은 민숙이 엄마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큰길로 뛰어나갔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민숙이와 어떤 아이가 싸우고 있었다. 민숙이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더니 이내, “쟤가 나를 쳐다보고 욕했어요.”하며 소리쳤다. 이 말을 듣던 상대 아이는 억울하다며 “내가 언제!”하며 소리쳤다. 민숙이를 아무리 말려도 내 말을 도통 듣지 않았다. 결국 양쪽 어머니들이 오고 끝이 났다. 상황이 얼추 정리가 되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민숙이 엄마는 말했다.


“센터장님 고마워요. 민숙이 밥 좀 먹여주세요.” 이 말만 덜렁 남긴 채, 자전거를 타고 사라져 버렸다. 


민숙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는 만났다. 잘 웃고 귀여운 얼굴이면에 화를 가득 품고 사는 아이였다. 민숙이 옆에 있으면 맞는 일이 많다 보니 곁에는 친구가 없었다. 늘 혼자 있는 민숙이를 보면서 ‘언제부터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뾰족하게 세우고 지내게 된 걸까?’ 궁금했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엄마를 만났다. 처음 마주한 민숙이 엄마의 눈빛은 불신과 의심이 가득했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낯선 이에 대한 경계는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를 한참 관찰하던 민숙이 엄마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센터장님이 우리 애를 잘 볼 수 있겠어요? 전에 있던 선생님이 우리 아이한테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요. 우리 민숙이가 해 달라는 건 다 해주고, 모두 맞춰줬죠. 그런데 선생님이 그걸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선생님을 믿어도 되나요?” 가시 돋친 말이었다. 어떻게 모든 걸 다 맞춰주지? 궁금했지만, 생각을 잠시 접고 말했다.


 “어머니, 사람이 바뀌어 걱정이 많으시죠? 전에 계셨던 분이 얼마나 잘하셨는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방법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하겠어요. 민숙이를 지켜본 후 아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잘 돌볼게요. 궁금하신 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민숙이 엄마가 아이에게 관심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민숙이 엄마는 아이보다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우선이었다. 민숙이를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에 맡기고 가게에만 있었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걸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에서 책임져 주길 바랐다. 부모로서 역할을 다하지 않고, 오로지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현재 민숙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외면하는 엄마의 모습이 몹시 불편했다. 물론 부모가 돈을 잘 벌기 때문에 민숙이 삶은 풍요로웠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침 등교 때 엄마와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면 민숙이는 늘 혼자였다. 제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달라고 부탁하면,


 “나도 어릴 때 부모님이랑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 잘살고 있잖아요? 왜 자꾸 아이랑 시간을 보내라고 하는 건가요? 지금 민숙이는 행복한 거지. 부모가 돈을 잘 벌잖아요. 나는 대학도 못 가고 일찍부터 돈을 벌었어요. 난 혼자서도 잘 자랐어요.” 민숙이는 엄마와 다르게 부모의 따뜻한 관심과 심리적인 안정이 우선인데, 그걸 모르고 있는 엄마가 절망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인 엄마의 무례한 태도는 하늘을 찔렀다.  

 “선생님, 우리 애가 병원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가주시겠어요? 애가 병원을 너무 무서워하는데, 애가 크니까 내 말도 안 듣고 감당이 안 되네요. 센터장님 말은 잘 듣잖아요.”

 “지금 가게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데 민숙이 저녁 좀 줄 수 있죠? 지금 학교 끝났는데, 센터로 보내면 되죠?”

지역아동센터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건 돌봄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대로 해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요구하는 바가 지나쳐서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민숙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일이 터졌다.


민숙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민숙이 엄마, 교감 선생님, 6학년 담임 선생님 등 나를 포함해 7명이 모였다. 민숙이가 일반학교를 가야 할지, 특수학교를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때 학교에서 회의를 주관했다.

 “어머니, 우리 민숙이 중학교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데, 생각이 어떠신지 궁금해서 모셨어요.” 담임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애를 학교에 맡겼는데, 그걸 내가 왜 정해요? 선생님들이 책임지고 민숙이가 다니면 좋을 학교를 찾아서 나한테 말해줘야죠.” 엄마의 답변은 가관이었다. 속에서 부글부글했지만 참고 내가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 우리 민숙이가 또래 친구들과 다르다는 건 어머님도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민숙이를 이해하고 잘 돌볼 수 있는 대안학교를 보내시는 건 어떨까요? 학교는 경기도에 있고 입학에 필요한 서류는 저희가 대부분 작성할 건데, 아이의 성장과정 등 부모님이 써야 할 서류가 있어요. 그것만 써 주시면 돼요” 엄마는 내 얘기를 듣더니 일터가 여기인데, 어떻게 이사를 가냐고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 모든 서류를 다 써주면 생각해 보겠다는 엄마의 무례한 태도에 선생님들 모두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오로지 민숙이 미래를 생각하고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의견을 나누기 바빴다. 그런데 엄마는 학교에서 책임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어머니, 민숙이가 제 자식인가요? 어머니 자식이잖아요. 민숙이 끝까지 책임질 사람은 어머니세요. 여기 있는 선생님들보다 더 관심 갖고, 걱정하며 자료를 준비하셔도 모자랄 텐데 모든 책임을 학교에서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세요? 대체 민숙이한테 관심은 있으신 거예요?” 교실이 살얼음판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할 역할은 애를 잘 먹이고, 입히고 하면 끝이죠. 공부는 학교에서 시키는데 그걸 왜 나보고 책임지라고 해요? 선생님들이 전문가 아니에요?” 

 “맞는 말씀이죠.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전문가죠. 그래서 어머니께 여러 가지 대안을 말하는데, 어머님이 듣지 않고 이랬다 저랬다 하시면서 선생님들 보고 책임만 지라고 하시잖아요.” 


대화를 듣고 있던 선생님들이 나와 민숙이 엄마를 말렸다. 민숙이 엄마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결국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상황이 정리됐다. 내 자식처럼 최선을 다해서 돌봐주고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어 앞장서서 나서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으로 나는 민숙이를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말했던 대안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입학신청서를 썼고, 엄마를 이사할 수 있게 설득했다. 물론 내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민숙이가 안전한 공간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민숙이를 걱정하는 모든 어른들이 같은 마음으로 의논하면서 민숙이에게 도움이 될 학교를 찾고 있는데, 민숙이 엄마는 자신의 이익을 더 생각했다. 민숙이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곤란을 겪고 있는지 크게 관심이 없던 민숙이 엄마는 자신의 뜻대로 집 근처 일반 중학교에 민숙이를 진학시켰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대부분이 민숙이와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이었다. 별 탈이 없길 바랐지만, 민숙이 세상은 매일 지옥이었다. 급식실에서 친구들과 머리 뜯고 싸우고, 복도에서 소리 지르며 친구와 싸우고, 수업을 방해해서 쫓겨나길  여러 차례. 학교에서 가장 큰 골칫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축 처진 어깨와 지친 표정으로 센터에 오는 날 민숙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아있기도 했고, 팔 여기저기 상처가 있었다. 그런 민숙이를 보면서 내가 끝까지 엄마를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생긴 일 같아 자책을 수없이 했다.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센터에서만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마음과 공간을 내어주는 것뿐이었다.


20살이 된 민숙이.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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