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플슈룹 May 15. 2022

온몸에 피멍이 들어야 아동학대 신고를 받아주나요?

선생님이란 단어에 집착한 결과,

 “선생님, 교실에서 이상한 냄새나지 않아요?” 

오후 내내 쿰쿰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던 때, 교실을 지나가던 아이가 말했다. 냄새가 나는 걸로 추정되는 그 교실에는 영하 혼자 숙제를 하고 있었다.


또래보다 작고 왜소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하며 낙천적인 영하는 친구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이랬다. 일주일 가까이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건 기본이고, 손톱에는 때가 껴있고, 씻지 않아서 항상 냄새가 났다. 아이들이 이런 영하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대책이 시급했다. 부모님 면담을 요청했지만, 도통 만날 수가 없었다. 결국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양말 빠는 방법, 머리 감는 방법, 옷을 선택하는 기준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려줬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 가정방문이 남아있었다. 



미리 약속을 하고 가정방문을 갔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영하 집에 갔다. 집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닥에 빨갛게 물든 도마 위 김치, 그리고 칼이 놓여있었다. 언제 빨았는지 모를 새까만 이불 위로 바퀴벌레가 돌아다녔다. 하루, 이틀 청소를 안 했다고 보긴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런데 만나기로 약속했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 있냐고 영하에게 물었다.


“선생님 만나기 싫다고 나가셨어요.”


집을 이렇게 해놓고 나를 피해버리다니 괘씸했다. 아이가 안전하게 돌봄을 받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난 아동학대 신고를 하려고 집안 구석구석을 사진 찍었다. 집안을 둘러볼수록 기가 막혔다. 지체할 필요도 없이 112에 신고했다. 신고를 하고 나면 관찰 경찰서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연락이 오기 때문에 신고 후 기다리고 있었다. 관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아동학대 신고하셨죠?” 신고자인 내 정보를 먼저 묻고, 아이와 관계를 물었다. 이어서 아이에게 어떤 학대 정황이 있는지 질문했다. 그동안 관찰했던 이야기를 쭉 전했다. 그동안 아이를 관찰하면서 기록한 관찰일지, 부모와 면담 후 기록한 부모상담일지 등 모든 정보를 공유할 테니 분리조치를 요구했다. 그런데 경찰의 답변은 이랬다. “애가 맞았어요? 멍든 곳이 있나요? 이 친구 학대 신고가 처음인가요?” 신체학대가 있어야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머뭇거리자, 지금 아이를 만나러 센터로 오겠다고 했다. 


얼마 후 사복경찰 한 명이 센터로 들어왔다. 당장 아이를 보여 달라고 해서 잠시 기다리게 한 후, 영하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아이를 낯선 사람과 둘 수 없어서 같이 있으면 안 되겠냐는 물음에 그냥 나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했던 나는 불안해서 교실 밖에서 이야기를 엿들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이랬다.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 아저씨가 너희 집에 갈 거야. 혹시 부모님한테 맞은 적 있니?” “아니요.”

“조사해서 정말 부모님이 너를 학대한 게 맞으면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괜찮아?” “싫어요. 절대 싫어요.”


경찰의 일방적인 질문에 11살 아이는 부모님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아이가 무서워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하는 경찰 태도에 화가 났지만 나설 수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경찰이 말했다.  “가정방문을 가봐야 알겠지만, 특별한 것이 관찰되지 않으면 선생님 말대로 분리조치는 어려워요. 아이를 일시적으로 받아줄 곳도 마땅치 않고, 부모와 떨어져 살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을 수 없잖아요?” 


이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가정 방문을 했고, 특이사항을 발견 못한 그들은 결국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답변에 모두 이해했다. 그러나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영하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방법을 찾던 끝에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영하 네 집을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해도 되는 노숙자가 꿈인 영하. 아이 눈에 노숙자는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깊은 절망에 빠졌지만, 이대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부모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고 결론 냈다. 그런데 뭐부터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다. 오랜 관찰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친구들이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청결 상태는 어떤지 관찰하게 시켰다. 옷을 갈아입는 이유, 양말 빠는 방법, 음식을 냉장고와 냉동고에 보관해야 하는 이유, 반찬 덜어 먹는 방법 등 기본생활 습관을 하나부터 꼼꼼하게 가르쳤다. 영하는 곧잘 따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핑계를 대기 시작하더니, 센터를 결석하기 시작했다. 영하는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했다. 맛있는 거 사 먹이며, 놀러 가고 어르고 달래서 겨우겨우 3년을 이어갔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영하는 초등학교 졸업 후 센터를 그만뒀다. 이후 6-7년간 소식을 전혀 접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영하.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 궁금하구나.



이전 01화 엄마에게 버림받던 그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