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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May 09. 2022

엄마에게 버림받던 그날

잘 살고 있지?

“안녕하세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인사한 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지역아동센터에 왔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툭 튀어나온 입이 눈에 띄었다. 재잘대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센터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며 잘 적응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처음에는 겉돌긴 했지만, 친구들과 별 탈 없이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를 하던 현지에게서 심상치 않은 말을 들었다. “선생님! 주방에 그릇이 있어야 해요? 이상하다. 우리 집 주방에는 화분이 엄청 많거든요”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화분이 어느 정도 있는지 물었다. 해맑고 큰 목소리로 현지는 대답했다. “화분이 엄청 많아요. 엄마가 밥을 방바닥에 해요. 밥도 방바닥에서 먹어요.” 예사롭지 않은 답변이었다. 


확인을 위해 학교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다녀왔다. 눈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몰라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후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즐거워하는 현지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요” 문을 열어준 아이 뒤로 펼쳐진 모습에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현지 집은 뉴스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단칸방에 여기저기 높이 솟아 있는 빨래 더미, 싱크대를 가득 메운 화분들, 그릇과 도마, 칼,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험한 주방 조리도구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집은 아이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한 번도 갠 적 없어 보이는 이불 위에서 현지는 폴짝폴짝 뛰며 “선생님!” 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의 방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오로지 아빠뿐. 


현지 아빠는 우리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퀴벌레가 튀어나와 나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까치발로 서서 아빠와 대화를 나누며 방안을 둘러봤다. 뭘 어디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현지 아빠에게 양해를 구하고 싱크대, 화장실, 현관 집안 곳곳을 살폈다.


현지 네는 엄마와 아빠, 이모가 함께 살고 있었다. 엄마와 이모는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 혼자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단칸방에 이모까지 산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눈앞에 쓰레기부터 피워야 했다. 아빠와 합의 후 쓰레기를 치우고, 화분도 치워버렸다. 화장실 정리도 했다. 지저분한 이불을 치우려고 들었는데 바퀴벌레가 또 튀어나왔다. 내가 소리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현지는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어느덧 정리가 됐고 차분하게 아빠와 이야기를 다시 나눴다. 가장 궁금했던 엄마와 이모에 대해서 물었다. 엄마는 집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목사가 되겠다며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그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늦게 들어와서 현지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더 놀라운 점은 이모란 사람은 친 이모가 아니고, 중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엄마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다음 방문 때는 엄마와 이모를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후 집을 나왔다.


좀처럼 우리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와 겨우 약속을 잡았다. 엄마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집을 찾아갔다. 역시 우리를 반기는 건 현지뿐이었다. 아빠는 안절부절못했고, 엄마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엄마의 모습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고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물었다. “어머님, 많이 바쁘신가 봐요” 


현지 네는 엄마와 아빠, 이모가 함께 살고 있었다. 엄마와 이모는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 혼자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단칸방에 이모까지 산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눈앞에 쓰레기부터 피워야 했다. 아빠와 합의 후 쓰레기를 치우고, 화분도 치워버렸다. 화장실 정리도 했다. 지저분한 이불을 치우려고 들었는데 바퀴벌레가 또 튀어나왔다. 내가 소리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현지는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어느덧 정리가 됐고 차분하게 아빠와 이야기를 다시 나눴다. 가장 궁금했던 엄마와 이모에 대해서 물었다. 엄마는 집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목사가 되겠다며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그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늦게 들어와서 현지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더 놀라운 점은 이모란 사람은 친 이모가 아니고, 중학교 선후배 사이였다. 엄마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다음 방문 때는 엄마와 이모를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후 집을 나왔다.


좀처럼 우리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와 겨우 약속을 잡았다. 엄마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집을 찾아갔다. 역시 우리를 반기는 건 현지뿐이었다. 아빠는 안절부절못했고, 엄마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엄마의 모습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고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물었다. “어머님, 많이 바쁘신가 봐요” 


“내가 바쁘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현지 엄마는 쏘아붙이듯 말했고 나는 방문 의도를 설명했다. 

 “저희가 이렇게 찾아와서 불편하시죠? 현지가 집에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다른 의도는 없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때부터 엄마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현지를 돌봐야 해요? 나는요 얘 없어도 살아요! 내가 뭐 낳고 싶어서 낳은 줄 아세요? 저 사람이 나한테 잘해줘서 그냥 같이 지낸 건데, 애가 생겨버렸단 말이에요! 임신 중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집에서 쫓겨나 공원에서 잔적도 있어요. 나는 억울해요!"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예상하지도 못한 엄마 이야기에 놀란 나는 아이를 쳐다봤다. 현지는 안 들리는 척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게 뻔했다. 다급한 마음에 함께 온 동료에게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어머니, 아무리 낳고 싶지 않은 아이라고 해도 낳았으니 책임져야죠! 엄마가 싫다고 하면 현지 누가 키워요? 아빠는 새벽부터 일 나가니까 상황이 안 되고, 엄마는 교회 다녀와서 현지 돌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이런 곳에서 누가 아이를 키웁니까? 이건 방임이고, 학대예요” 

 엄마는 내 얘기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문밖에 있는 아이가 들으란 듯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원해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그리고 보육원에 보내는 거 찬성해요. 나는 키울 수 없어요.” 

 오늘 처음 본 현지 엄마에게 듣는 이 말이 내게도 절망적이고 충격인데, 현지에게 얼마나 비수가 될까? 대화를 더 이어 나갔다가는 아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이야기를 그만뒀다. 


그날 이후 깊은 시름에 빠졌다. 양육 능력이 없는 아빠, 딸에게 비정한 말을 쏟아내는 엄마를 믿고 현지를 맡길 수 없었다. 명백한 아동학대고, 신고가 답이었다. 신고를 앞두고 다른 구제 방법은 없는지 학교 선생님들과 회의했고, 현지 아빠의 양육 능력을 여러 번 점검했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신고가 정답이지만, 우리 선택으로 인해 아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했다. 학교와 논의 후 내가 신고하기로 결정했다. 늘 그렇듯 신고 후 경찰, 구청,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많은 기관 담당자들에게 내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 그런데 이번 신고 후 기관들의 대응이 달랐다. 신고자는 신고 이후 절차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신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가 당장 보육원으로 가게 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학대 신고 후 이렇게 바로 분리 조치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특히 방임, 정서학대는 분리가 바로 되지 않는데, 현지는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지만 당장 현지를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현지는 학교에서 짐을 간단하게 싸고 센터로 왔다. 본인 짐을 챙기고 짧은 인사만 남기고 가 버렸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우왕좌왕 했다. 그런데 현지의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졌다. 


 “선생님, 저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현지에게서 깊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신고하지 않았으면 집에서 잘 지냈을 것이고, 무엇보다 엄마에게서 그런 말을 듣지 않았을 텐데. 가슴이 아렸다. ‘내 선택이 맞았을까? 나 때문에 아이는 부모와 따로 살아야 하는데 괜찮을까? 나중에 어른들을 원망하면 어쩌지?’ 잡다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현지는 웃으며 가방을 둘러멨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손을 흔들며 밝게 웃는 현지에게 미소를 보여줘야 했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는 모습으로 현지를 보냈다. 현지가 간 이후에 나는 교실에서 대성통곡 했다.


현지는 아이들과 인사할 시간도 없이 떠나버렸다. 다른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가장 편한 변명, 이사를 핑계 삼았다. 이사 간다는 얘기도 없이 갑자기 갔냐며 아이들은 당황해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들과 현지와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사실을 알았다. 그때 현지는 “엄마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기 때문에 현지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서 빨리 분리 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를 포함해 4명이 현지를 만나기 위해 보육원을 방문했다. 헤어질 때 웃으며 보내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이번에 가서 인사를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현지를 만나기 전 보육원 원장님과 면담을 먼저 했다. 아버지는 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아버지도 심리치료를 받고 회복되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안심되는 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중 현지가 우리에게 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낯설게 변한 현지를 보고 나는 주춤했다. 내가 아는 현지는 천진난만 어린이였는데, 주눅 든 모습이 먼저 눈에 띄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보던 사이였는데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 대하듯 낯을 가렸다. 현지의 처음을 기억하는 나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마음이 아파 말도 걸지 못했는데, 담임 선생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현지와 헤어졌다. 


당시를 회상하며, 내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만약 같은 상황에 다시 놓여도 나는 신고할까?’ 내 대답은 변함없다. 아이를 부모로부터 분리해야 했고, 그것만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신고는 불가피했다. 다만, 신고는 응급조치일 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신고 후에 아이가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부모의 태도가 변화해야 아이의 미래가 낙관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현지는 이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나이인데, 지금쯤 아빠와 함께 살고 있을까? 현지의 안부가 궁금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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