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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Jan 10. 2023

선생님이 잠수를 탔어요!

이해해

"뭐해?"

"그냥 있지. 왜? 무슨 일 있어요?"

"어린이집에 급한 일이 생겼는데 지금 바로 올 수 있겠어?"

"갑자기? 준비하고 나가도 두 시간은 걸리는데?"

"미안해! 빨리 와주면 좋겠어"

"알았어요. 지금 갈게요."


어린이집에서 종일반을 맡고 있던 나는 오후 출근을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급하게 나를 찾는 원장 언니 전화에 놀라 출근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여름방학이 끝나고 왔는데, 7세 반 담임이 출근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교실을 확인했는데 책상 서랍에 사표가 있더라"

"정말? 갑자기 무슨 일이래?"

"전혀 몰랐지. 전혀 티 나지 않았는데, 당황스럽네. 애들을 일단 돌보는 게 중요한 상황이야. 미안한데, 7세 반을 잠시 봐줄 수 있을까?"


긴급상황이라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8월에 교사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경력 하나 없는 내가 7세 반과 종일반을 맡게 됐다. 담임이 나타나지 않자 아이들은 많이 놀랐다. 그렇지만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에 담임선생님이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잠적한 담임은 최근 '업무에 대한 불만을 자주 표현했고, 일이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라고 다른 교사들이 말했다. 기력 없이 다닌 그 선생님을 보긴 했지만, 나 살기 바쁘다 보니 그냥 넘긴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그만둘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수를 타버린 선생님으로 인해 어린이집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금방 자리를 잡고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사라져 버린 선생님도 편하지 않았겠지만, 수습하는 입장에서 아주 힘들었다. 특히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교실을 맡게 돼서 제일 고달팠다.


잠적한 선생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알아봐 주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지 마세요. 우리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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