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들어서면 문이 있다. 찬바람도 막아주고, 더위도 막아준다. 고마운 문이지만'무겁다'라는단점이 있다. 특히 지하철이 역 안으로 들어오면 바람 때문에 문이 더 안 열린다. 나도 힘들게 여는데 어르신들, 특히 고령의 여성 힘으로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끔 문을 열어드리기도 한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문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안쪽에서 문을 못 열고 계신 할머니가 계셨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가서 문을 열어드렸다. 물론 뭘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다. 우리 엄마 또래로 보였고, 늘 하던 행동이었기에 자동으로 몸이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런데 금방 알았다. 내 마음이 순수하지 않았음을.
그 할머니는 내가 문 잡은 걸 보더니 잽싸게(이 표현이 딱 맞다) 내 오른팔 아래로 몸을 숙이고 '쌩~' 하고 가버렸다. 순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얼굴 정도는 마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배려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가?'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한참 씩씩대던 중, 내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서로 대화하는 것을 느꼈다.
(천사) '뭘 바란 것도 아닌데, 왜 열 내고 그래? 그냥 가던 길 가자. 오늘 즐거운 날이잖아'
(악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심한 거 아냐? XX 없잖아'
(천사)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본데, 신경 쓰면 너만 옹졸해져. 그냥 가'
(악마) '다시는 이런 행동하지도 마! 친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런 사람들이 문제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