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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Feb 23. 2023

친절을 베풀었더니,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지역아동센터를 그만둔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에게 꾸준히 연락이 온다. 

"보고 싶은데, 우리 언제 만나요?" 

그래서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약속했다.

약속 당일,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문이 있다. 찬바람도 막아주고, 더위도 막아준다. 고마운 문이지만 '무겁다'라 단점이 있다. 특히 지하철이 역 안으로 들어오면 바람 때문에 문이 더 안 열린다. 나도 힘들게 여는데 어르신들, 특히 고령의 여성 힘으로 문을 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끔 문을 열어드리기도 한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문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안쪽에서 문을 못 열고 계신 할머니가 계셨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가서 문을 열어드렸다. 물론 뭘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다. 우리 엄마 또래로 보였고, 늘 하던 행동이었기에 자동으로 몸이 반응했던 것 같다. 


그런데 금방 알았다. 내 마음이 순수하지 않았음을.



그 할머니는 내가 문 잡은 걸 보더니 잽싸게(이 표현이 딱 맞다) 내 오른팔 아래로 몸을 숙이고 '쌩~' 하고 가버렸다. 순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적어도 얼굴 정도는 마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배려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가?'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한참 씩씩대던 중, 내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서로 대화하는 것을 느꼈다.

(천사) '뭘 바란 것도 아닌데, 왜 열 내고 그래? 그냥 가던 길 가자. 오늘 즐거운 날이잖아'

(악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건 심한 거 아냐? XX 없잖아'

(천사) '원래 저런 사람인가 본데, 신경 쓰면 너만 옹졸해져. 그냥 가'

(악마) '다시는 이런 행동하지도 마! 친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런 사람들이 문제라니까'


정말 별일도 아닌데, 그냥 넘기면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러워졌다.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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