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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Aug 08. 2023

선생님을 어떻게 믿어요?

비밀 유지

“선생님한테 말하면 어차피 엄마도 금방 알게 되는 거 아니에요?”


놀란 마음에 ‘아니라고’ 손사래 쳤지만, 아이가 툭 내뱉은 말에 강한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어느 날,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상담실 선생님에게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그것이 전달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다짐했죠. 다시는 선생님들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유레카였다.


나도 어린 시절 담임 선생님과 나눴던 말이 엄마에게 새어나갈까 노심초사했던 경험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솔직함이었다. 물론 상담은 비밀 유지가 기본이지만 원칙이 있다. 내담자의 안전, 생명의 위협을 알게 되면 무조건 알려야 한다. 이런 원칙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부모에게 말했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그래서 상담의 기본원칙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1년 동안 최소 2번 이상 아이들과 상담해야 한다. 상담하고 기록도 남겨야 한다. 텅 빈 교실에서 어른과 마주한 아이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찾은 도구가 타로였다. 아이들은 타로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흥미로워했다. 물론 타로를 전혀 모르는 나는 온라인 강의를 통해 공부하고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타로 상담을 하려면 고민을 사전에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친구가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어요"

"친구가 나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하죠?"

"꿈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이 많이 쪘는데 보기 싫어요"

"엄마가 힘들어하는 데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대부분 친구, 가족, 공부와 관련된 고민이다. 아이들의 글을 먼저 읽어본다. 아이가 어떤 카드를 뽑을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답을 준비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를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과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사전에 준비한다. 물론 아이 중 일부는 진짜 고민을 적지 않는다. 그런 부분도 염두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선생님, 뭐 하는 거예요? 타로가 뭐예요? 이거 진짜 맞아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들어온 1학년 아이는 타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빨리 진행했다. 아이의 고민은 “학교 가기 싫어요”였다. 그럴만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를 못 가게 됐다. 시간 맞춰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지루한 수업을 듣지 않아도 돼서 행복했다. 시간이 흘러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학교를 나가기 시작하니 죽을 맛이었던 아이의 가장 큰 고민은 학교였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카드를 뽑았다. 뽑은 카드에 칼이 8개가 그려져 있었다. 너무 놀란 아이는 “학교 가야겠는데요?” 어이없어하는 표정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웃겼다. 학교에 가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가지 않으려고 나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답변했다. “맞아요. 학교 가야 하는 이유 알지만 가기 싫었어요. 열심히 다녀야겠네요” 포기한 듯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등을 토닥토닥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위로해 줬다.


친구가 목을 조른다는 고민을 적어낸 5학년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어떤 상황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지나치게 과장된 말투, 행동을 보이면 아이는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천천히 풀어나갔다. 학교에서 활동 중에 일어난 일이었고, 본인이 싫다고 말해서 몇 차례 실랑이 후 그만뒀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큰일이 아닌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단순히 무서워서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냥 무섭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어른은 무서운 존재가 아닌데, 그냥 무섭다는 말 하나로 표현한다. 걱정스럽다, 두렵다, 떨리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속해 알려줬다.






상담의 가장 기본 중 하나는 비밀 유지다. 아이들과 상담할 때 특히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아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바로 부모와 학교에 알려야 한다. 알리기 전 먼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어렵게 마음의 문을 연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일이다. 아이들은 친구에게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했을 때, 선생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부모와 갈등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상담할 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지금 들은 내용 중 어른들에게 알려야 하는 부분이 있고, 내용과 방법을 너와 함께 의논해서 정할 거야. 그리고 결정된 내용은 네가 직접 부모님께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나 말하는 것이 두렵다면 내가 대신 말할 수 있어. 사실이 알려지면 어른들이 추궁할 수 있고,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까지 말해야 할 수도 있어.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가 언제쯤 부모님께 말하는 게 좋을까?”


이제 선택은 아이 몫이다. 모든 아이가 부모에게 말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아이가 거부하면 상담 내용의 일부를 부모에게 전달한다는 것까지 말한다. 대신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지켜보면서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아이를 설득한다. 아이는 고민 끝에 스스로 말하기도 하고, 내가 대신 전달하기도 한다. 그 어떤 선택이 됐든 아이가 정한다.


아이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예측할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어른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알려주고 아이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어른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연습을 어린 시절부터 꾸준하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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