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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슈룹 Jul 19. 2022

종이비행기 사건의 전말

편견의 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종례시간, "이번 모의고사는 수능 형식으로 치른다"라고 담임이 말했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던 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낯선 제도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부디 마주하지 말자!'






드디어 모의고사 당일. 심란한 마음으로 등교했고, 나는 교실 가장 뒤쪽 창가에 앉았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나눠주고 나갔다. 시험지를 펼쳤는데, 대박! 지문은 너무 길고, 못 보던 문제 유형이었다. 멘붕이었다. 백지를 낼 수 없으니 풀기 시작했다.


문제를 한참 풀다가 집중력에 '한계'란 녀석이 찾아왔다. 나는 시험지를 내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에 홀려 어느새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하나, 두 개쯤이야 괜찮겠지'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보고 너무 신나서 계속 날렸다. 문제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친구들이 나를 따라 하나, 둘씩 날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1층은 비행장처럼 변해 있었다. 


'아뿔싸! 큰일 났다'


우리는 모른척하고 다시 시험에 집중했다. 그런데 1층에서 소란스럽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담임이 올라왔다. "종이비행기 날린 거 우리 반에서 한 거니? 아니지?" 내가 시작했기 때문에 날벼락 맞을 준비를 하고 용기 내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담임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네가 그랬다고? 정말이야? 따라한 거 아니고?" "제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도 차례로 손을 들었다. 우리는 결국 교탁으로 불려 나갔다. 무서웠지만 내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시작했고, 얘들은 따라 한 거예요" "알았어. 넌 자리로 돌아가. 나머지들은 교무실로 와!" 선생님은 나만 자리로 돌려보낸 것이다. 내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설사 내 말을 믿지 않더라도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되는 아닌가? 담임이 단단히 미친 게다.






학창 시절 공부 못하는 모범생이었다. 늘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다. 수업시간에 졸지도 않고, 숙제가 밀리는 일도 없었고, 문제행동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내가 주동자라고 하니 선생님은 1도 믿지 않았다. 웃긴 건 같이 있던 친구 중 1명은 공부를 무척 잘했는데, 역시나 금방 풀려났다. 나머지 친구 3명만 호되게 야단 맞고 비행기 줍고, 청소까지 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냐,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내가 시작한 건 맞지만, 막상 나만 살아서 무서웠다. 친구들에게 외면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친구들과 별일 없이 지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아동복지시설에 근무하며 온갖 편견과 싸우던 내가 담임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아이들 여럿이 함께 실수해도 공부 잘하고, 평상시 품행이 좋았던 아이에게 보다 더 관용을 베풀었다. 아찔한 순간을 직접 경험하고도, 똑같이 행동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편견과 모순덩어리의 인간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 더욱더 조심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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