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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공공 Mar 15. 2022

마레에게 일어난 일

순간의 달콤함들이 모이면 빛나는 인생이 되겠지

다람쥐처럼 조르르 정원과 나무와 연못을 뛰어다니는 마레의 첫 말은 '과자'였다.

마레와 마레의 할머니는 가장 친한 친구이다. 참을성이 없고 먹성 좋은 것이 꼭 닮은 둘은, 정원에서 뛰어놀며 잔치가 열린 것 같이 과자를 먹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마레가 태어났다던 벚나무에 걸린 그네를 신나게 타는 둘의 모습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 바닥이 보이지 않고 그네의 줄은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되어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지셨고 깨어나셨을 때는 많은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바퀴와 울타리가 달린 하얀 침대에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만 멍하게 바라보는 할머니 곁에서 마레는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가 텅빈 벽에 그림을 그리고 탁자에 올릴 것들을 만들고 과자 접시도 가져다둔다.

마레는 할머니가 한마디만 소리내어도 어떤 말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다. 할머니 눈을 보고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낸 것이다. 둘이 과자를 먹고 뛰어놀며 나누었던 대화들과 시간들이 만들어낸 연결고리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현장을 엄마와 함께 목격한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고 꿈쩍 안했지만, 두 눈을 감은 채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왜 웃고 계셨을지 이유는 모르지만 아주 평화로운 죽음의 모습이다. 내가 갖고 싶은 그런 죽음의 모습.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눈물을 흘린다. 아주 많이. 그리고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도 아마 마레만 알아들을 수 있었겠지. 그래서인지 마레 혼자서 할머니를 할아버지에게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마레를 바라보며 생긋 웃으며 말한다.

"과자."

마레가 태어나서 처음 말한 단어인 '과자'라는 말이, 할아버지 생의 끝이자 할머니가 다시 웃기 시작한 순간에 할머니의 입을 통해 나온다. 할머니의 병환과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들이 '과자'라는 단어와 함께 달콤한 순간처럼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죽음의 순간에 웃은 것 처럼, 할머니가 그런 할아버지를 보내고 웃은 것 처럼, 묵직하게 느껴지는 일들도 사실은 무심코 지내다가 피식 한번 웃는 것 같은 그런 순간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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