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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공공 Mar 19. 2022

카메라가 있을 뿐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사울 레이터. 전혀 몰랐던 이름이다.

사실 '피크닉'이라는 장소에 가보고 싶어서 본 전시였지만 울림이 꽤 컸다.

요즘은 어디에서든 울림을 잘 느끼는 시기라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에 둘러 쌓여 언제까지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차근차근 더 곱씹어보고 싶은 그런 느낌.

Untitled, C. 1950 / Side walk, C. 1950s
Red curtain, C. 1956 / Green dress, C. 1957

전시를 보며 처음에는 이거 뭔가 싶은 사진들도 있었다. 이런걸 찍네 싶기도 하다가, 이런것까지 찍어서 남기고 담아두려는 그 시선이 흥미로워졌다.

주변의 아주 짧은 순간과 지극히 일상적이고 어쩌면 하찮은 그런 장면까지 바라볼 줄 아는 그 시선에서 20대의 내가 생각나기도 했다.

생의 거의 모든 나날을 뉴욕에서만 보냈던 사울. 긴 시간 동안 한 도시의 모습을 담아내고 기록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말그대로 '스며들어' 사진으로 담았던 그는 얼마나 많이 걷고 바라보고 찍었을까. 카메라와 필름 몇 롤을 항상 들고 다녔겠지. 걷다가 문득 보이는 장면을 찍기도 하지만, 그냥이라면 보지 않을 각도에서 일부러 바라보기도 했겠지.



Begging, C. 1952

여러 작품이 마음과 머릿속에 남았지만, 'Begging'이라는 사진  장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목은  그러하며 어떤 자세로 찍은 걸까. 골목 귀에 쭈그리고 앉아야 나올  있는 각도인  같은데,  한장을 찍기 위해 멈춰섰던걸까. 피사체를 배려하느라 몸을 숨겨 이렇게 찍은걸까. 검은 옷의 피사체가 구걸하는 중일  같긴 한데, 제목이 아니라면 전혀   없다.

여전히 궁금증은 풀리지 않지만, 그냥 재미있다. 이런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모여 어떤 온기를 뿜어내고 있어서인지 그냥 좋았다.



스니펫(Snippets) _ 인쇄된 사진을 명함 크기로 찢어 만든 사진 조각들을 스니펫이라 불렀다. 스니펫들은 레이터를 둘러싼 작고 따뜻한 세계의 축소판과도 같다.
Deborah, C. 1946  /  Soames, C. 1970



그리고 왜 이렇게 따뜻한가 했더니, 그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전시 마지막 즈음에 있던 인터뷰 영상에서, 그의 친구들이 담아준 모습에서, 그의 따뜻함과 사랑이 느껴졌다.


내가 아끼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갖는 것을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죠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성공하는 것보다요
만약 누가 선택하라고 하면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내가 아끼는 사람이 있고
날 아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을 선택할 거예요
웨딩 사진 촬영을 방해 중인 사울. 1980





갑자기 흐리고 쌀쌀했던 3월 중순의 한 날.

사울의 사진은 그런 날과 어울렸고, 사진이 뿜어내는 온기는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다.

그리고 우리는 타박타박 걸어 군만두와 맥주 한잔을 했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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