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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13. 2019

잔망스런 이야기 3

 약속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 어깨동무를 하시더니, 저만치 복도 끝에 엄마와 함께 서 있는 A를 보며 말씀하셨다.        


"저 친구는 3개월만 있다가 다시 서울로 전학 간다니까, 그동안 네가 친구가 돼 줘라”        


알겠다고 하면서 보니, A는 하얀 얼굴에 바가지 머리를 찰랑이며(서울 아이의 표본) 프릴 블라우스에 멜빵 달린 보라색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 엄마도 세상 세련된 서울 아줌마였다. 나에게 잘 부탁한다며 웃었다. A는 부탁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는 친구였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체육도 잘하고... 나를 부탁하고픈 친구였다. 3개월만 있음 갈 거라는 게 싫었다. 사실 처음부터 A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 댁에 맡겨졌단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첫날 담임 선생님이 말해 주셨으니까. 나에겐 이혼이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뭔지도 잘 몰랐을뿐더러, A가 좋은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불안 속에 3개월이 지나고... 6개월... 1년이 다 돼 가도 A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가끔 A랑 놀다가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다. 선생님이 뭘 걱정하는지 알았지만,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A는 학교에서 서울 자기 집 자랑을 하기도 했고,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다. 그렇게 붙어살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다.         


4학년이 됐을 때 서울에서 B가 전학 왔다. 백지장 같은 얼굴에 바람 불면 날아갈 듯 야리야리한 친구였다. B는 숫기라곤 없어서 남자아이들의 말 한마디에도 곧잘 울었고, 학교에 있는 내내 고개 숙인 채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B도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했다.(어떻게 알았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느 토요일 오후, 집에서 놀고 있는데 B가 우리 집엘 찾아왔다. 정말 놀랐다. 우리 집을 가르쳐 준 적도 없고, 그만큼 친하다고 여기지도 않았으니까. B는 처음 보는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내 이름표를 내밀었다. 우리 반은 학교 앞 문구사에 단체로 이름표를 맡겼는데 자기 거 찾으면서 내 것도 찾아서 가져다주러 왔다고 해서 더 놀랐다. 그걸 굳이? 지금?    


B는 아빠랑 같이 왔다. 아빠 손을 잡고 있는 B는 웃는 걸 넘어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B랑 똑 닮은 B의 아빠가 내 눈을 피하며 말했다.        


"우리 딸한테 잘해줘서 고맙다”         


B의 아빠를 보면서 알았다. B는 서울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내 친구 A는 서울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정말 약속을 지킬 부모라면 저런 얼굴을 하고, 와도 몇 번은 왔어야 맞다. 갓 열 살을 넘긴 아이를 덩그러니 낯선 시골에 맡겨두고 해가 바뀌도록 아빠도 엄마도 아이를 보러 오지 않는다. 아이는 절대 부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나와 똑같이 어린 A는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처 받아서 씩씩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A는 부모님이랑 함께 살아야 한다. 나 좋자고 A가 계속 여기 있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순식간에 많은 것들을 깨달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B는 3개월도 되기 전에 서울로 갔다.         




A와 난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반이 갈리고 새로운 많은 친구들이 생겼지만, 나에겐 A가 일 순위였는데 A에겐 아니었다. 질투가 났다. 아닌 척했지만 안됐다. 아닌 척하며 A에게 상처를 줬다. A에게 상처를 주면 내게도 상처가 났지만 사춘기의 질투가 그랬다. 한 번은 내 방에 A랑 같이 있는데, 구석에 못 보던 쇼핑백이 놓여있었다. 난 짐짓 쇼핑백을 들고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갔다. 점심때 잠깐 집에 오셨던 아빠가 며칠 째 내가 조르던 메이커 점퍼를 사 오셨다고 했다. 난  내 방에 있는 A를 한껏 의식하며 한참을 엄마랑 얘기를 하다가 내방으로 갔다. A는 가고 없었다. A랑 같이 덮고 누워있던 이불이 A가 빠져나간 모습 그대로 둥그렇게 비어있었다.     

그 주, 주말이 지나고 A는 자기 반 친구와 색깔만 약간 다를 뿐 디자인이 똑같은 점퍼를 나란히 입고 왔다. 시장에 같이 가서 샀다고 했다.     


그렇게 서걱거리던 어느 날,  A와 냇가에 갔다. 가려고 간 게 아니라 학교가 파하고 어쩌다 나란히 운동장을 걸어 나오게 됐고, 자연스레 둘이 자주 가던 곳으로 발길이 향한 것이다. 동글동글 자갈밭에 앉아서, 노을에 물들어 빨갛게 넘실대는 물결을 바라봤다. 분위기 탓이었을까...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A에게 부모님에 대해 물었다.     


“... 그것들이 사람이냐”        


A는 내 품에서 펑펑 울었고, 난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A와 난 더.... 멀어졌다.         




학교 개교기념일에 버스를 타고 옆면에 있는 초등학교에 갔다.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옆면의 초등학교에 전근 가 계셨다. 중학생이 된 나를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 학교 개교기념일이지, 그 학교는 아니었기에 선생님은 수업 중이셨다. (생각해 보면 참 철없는 짓이다) 선생님이 제자라고 나를 소개하자, 선생님 반 꼬맹이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난 칠판 앞 바닥에 놓인 나무 단에 걸터앉아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꽤 오래 그렇게 민폐를 끼치다가 꼬맹이들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하고 나왔다. 선생님이 운동장까지 배웅해 주셨다. 돌아서던 선생님이 A의 안부를 물으셨다.         


"... 아직 있어요”        


선생님은 알겠다는 듯 엷게 웃으셨다.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는데, 다른 친구와 냇가에 가는 A를 봤다. A와 난, 다른 고등학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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