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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Aug 13. 2019

잔망스런 이야기 2

소리

기차를 TV에서만 보고 아직 실물 영접을 못 했던 어린 시절, 밤에 자려고 어두운 방에 누우면 꼭 멀리서 기차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스라하면서도 반복되는 그 소리가 너무도 좋았다. 저기 읍 기차역에서 기차가 가는구나... 멀어서 이렇게 작게 들리는구나... 스르르 잠이 절로 왔다.         


엄마가 정미소에 우리 집 쌀을 가지러 가신 다기에 트럭을 얻어 타고 따라갔다. 추수철이라 밤에도 정미소 기계는 쉴 새가 없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 기차는 먼지를 뒤집어쓴 정미소 기계였다는 것을. 냇가 건너 마을에 정미소가 있어서 아스라했고, 시끄러운 낮엔 소리가 묻히다가 조용한 밤이 되면 그렇게 아름답게 들린 거였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똑같이. 기차 소리가 들리기엔 기차역은 우리 집과 너무도 멀었다.         


창피하고 어이도 없고 허무하기까지 했다.

밤에 듣는 기차소리 너무 좋다고 가족, 친인척, 친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옆에서 듣는 정미소 기계 소리는 ‘오지게’ 시끄럽고, 먼지가 ‘말도 못 하게’ 날렸다. 넓은 벨트에 엮여 돌아가는 기계들은 위압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날 밤도 ‘정미소 기차 소리’는 좋은 것을... 사랑스러운 것을... 멀리서 봐야 희극인데, 너무 가까이서 봤다. 

그 후로는 그냥, 기차려니..... 했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던 그 기차는 더 이상 운행 안 한다. 없어졌다.         




밤에 들은 좋은 소리 중엔 ‘이름 모를 산새’ 소리도 있다. ‘우웅, 우웅...’ 우는 그 새는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물어도 보고, 찾아도 봤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기차소리와는 다르게 산새 소리는 ‘구슬픔’을 동반한다. 저 어두운 산 어딘가에서 ‘우웅, 우웅... ' 우는 그 소리를 듣고 누워있자면 나 자신이 마치 화질 안 좋은 TV문학관 속 땟국물 흐르는 어린아이가 된 듯 서러워진다. 어두운 검은 산에서 우는 새는, 아직 살지 않아 모르는 많은 일들과 감정을 얼핏 보여준다. 엄마랑 자고 싶게 만드는 소리다.         


문제는 싫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독성이 있다. 가만히 그 산새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밤은 더 어두워지고, 달은 더 그윽해지고, 별은 더 빛나고... 그 사이 어딘가 내가 서 있다. 어쩌면 밤이라는 시간이 아이에겐 그런 건가도 싶다. 어두운 밤은 무섭지만, 호기심과 상상력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별히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어른이 없어도, 자려고 누운 그 어둡고 조용한 짧은 순간은 온전히 아이만의 시간이다. 아이만이 아는 존재들의 시간이다.        




몇 년 전 이사를 했는데, 세상에나 밤에 ‘우웅, 우웅..’ 그 새님이 우는 것이다. 순간 시공간의 ‘warp’를 경험했다. 어린 난, 시골집 방안에 내복 바람으로 누워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눈을 뜨면 익숙한 곳도 몰라보고 허둥대는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다. 아찔했다. 새가 한 번 운다고 그 밤이, 그 밤의 내가, 그 밤의 냄새가 살아났다. 아무 죄 없는 거 알지만 가끔 까마귀 소리에 기분이 싸해지는 것처럼, 도시에 사는 그 대단한 새님의 한 번 울음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청량한 것이 나를 좍 훑고 갔다. 프루스트에게 ' 홍차에 적신 마들렌' 이 그런 것처럼, 누구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어린 날 어두운 방에 누워서 보았던, 나무 그림자까지 내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한 아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깃들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유무형의 존재들이 아이를 키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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