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참말로 맛없을 줄 알았드니, 이상 맛있어야’
올해 팔 순 이신 엄마는 요즘 막대사탕(츄파춥스) 맛에 빠지셨다. 얼마 전엔 일본 산 우무 젤리, 그 전엔 홍삼캔디, 또 그 전엔 소금 사탕, 박하사탕....... 사랑 주기가 점점 짧아지더니, 이젠 맛 난 사탕도 없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막대사탕의 부드러운 맛이 엄마에게 간택받았다. 화이트데이에 조카가 막대사탕 한 통을 받아왔는데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걸 보고는 통째로 내 드린다. 체신 머리 없는 고모(나)는 조카에게 남자가 줬어? 여자가 줬어? 하고 깐족대다 ‘그런 건 묻는 거 아냐’라는 일갈에 찌그러졌다. 하얀 사탕 막대를 물고 웃으시는 검버섯 핀 엄마 얼굴이 좋다. 사양 않고 조카의 사탕 통을 챙기시는 게 귀엽다.
엄마 품에 쏙 들어가던 시절, 엄마는 나를 안아, 왼손으로 내 목을 받치고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겨주셨다. 난 세상 편안한 자세로 ‘머리 감 김’을 당하면서 내 코앞에 있는 엄마의 얼굴을 봤다. 턱 아래부터 목부근이 제일 잘 보이긴 했지만(물론 콧구멍도) 아래에서 올려다본 엄마의 얼굴선을 아직도 기억한다. 매끈하고 하얗고 가늘었던... 엄마가 침만 삼켜도 움직이던 엄마의 목은 꼭 손으로 만져봤다. 뒤통수 쪽을 감길 때는 그야말로 엄마 품에 폭 안기게 됐는데 그때 엄마의 냄새는 영원하다. 머리를 다 감기면 엄마는 내 목에 둘렀던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털어서 다시 머리에 감고는 나를 담쏙 들어서 방 안에 내려놓았다. 그럼 이불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 좋던 기억이, 혼자 머리를 감아야 할 시기가 됐을 때는 귀찮고, 춥고, 맵고, 축축한 숙제가 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렇게 가까이서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일도 끝이었다.
오래전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시골집에서 ‘압력솥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엄마는 끝방 아궁이에 닭(아님, 돼지)을 삶고 있었는데 압력솥 아귀가 잘 안 맞았던지, 뚜껑이 폭발과 동시에 날아갔고, 뜨거운 물이 엄마의 얼굴과 팔에 쏟아졌다. 처음 듣는 엄마의 비명에 설거지를 하고 있던 큰언니가 개수통 물 그대로를 엄마에게 들이부었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그 와중에 옷을 갈아입고 갔다)
응급처치를 마친 엄마의 얼굴은.. 참혹했다. 새빨갛게 부풀어 올라 우리 엄만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엄마에게 부기가 가라앉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병실에 있던 거울을 가리고, 엄마가 달라고 해도 절대 거울을 보여 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문병을 오신 엄마 친구 분들과 동네 분들이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너나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손을 꼭 잡고는 ‘고운 얼굴을 버려버렸다’면서.... 엄마도 같이 우셨다. 아빠가 압력솥을 뜯어내서는 다시는 못 쓰게 탕탕 우그려서 버렸다. 우리 집에서 이제 추석은 끝이라고 하셨다.
담당 의사는 너무도 태평했다. 그렇게 심한 화상이 아니라면서 염증 없이 잘 가라앉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가족들은 도시의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이다.
부기가 가라앉고, 붉은 기가 가시고, 얼굴이 한 꺼풀 다 벗겨지고 나자, 엄마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아니 오히려 더 깨끗해졌다. 의사가 박피 한 셈이라고 했다. 큰언니가 쏟아부은 개수통 물이 엄마 얼굴의 화상 열기를 효과적으로 빼냈다는 것이다. 팔은 옷을 갈아입고 하면서 흉터가 남았다. 얼굴 때문에 팔은 신경도 안 썼는데.
지금 우리 가족은 추석을 꼬박꼬박 잘 쇤다. 엄마 여름옷은 항상 팔부 소매를 산다. 나중에 엄마가 얘기해 준 사건의 전말은 - 폭발한 압력솥 뚜껑에 맞을 뻔하셨다는 것! 아무래도 솥이 이상한 것 같아서 들여다보는데 솥뚜껑이 날아갔다고 - 끔찍했다. 뚜껑의 각도가 일도만 달라졌어도... 하아.... 그런 생각은 안 한다. 추석을 온 가족이 병원에서 보냈고, 엄마 얼굴을 보고 뭐라고 하는 종자가 있으면 어떻게 죽여 놓을지 마음을 다지며 보낸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다 좋은 기억이다.
좋은 기억, 만 있는 사람은 없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행복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사랑받고, 사랑한 기억이 지금을 살아갈 힘이 돼 준다. 최근에 종영한 ‘눈이 부신 드라마에서 혜자’가 그러지 않던가, 남편과의 짧았지만 좋은 기억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 힘이었다고. 이미 가진 좋은 기억은, 내가 가진 힘이다. 나에게 없는 힘을 기르기 위해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며 안간힘을 써야 하는 시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데, 자꾸만 고쳐야 한단다. 고쳐야 성공하고, 최소한 덜 상처 받는다면서. 고쳐서 힘이 세지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힘을 더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누군가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우울이다’ 고도한다. 오, 들킨 건가...
그럼 인정하고 들어간다. 그래, 우울한 거 맞다. 맞는데, 우울을 태닝 하는 중이란 말이다. 저 고릿적 ‘잔망스런(잔망스러운) 생명체’ 였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다 토해내서 쓰고, 지금 엄마가 내 면전에서 ‘저것은 국민(초등) 학교 때 까지는 괜찮했던 거 같은 디, 지금은 모지리여’ 하고 말씀하셔도, 초라하고 별 볼일 없이 늙어 감을 날마다 뼈가 시리게 절감해도.. 이게 난데 어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네 녀석들 덕분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울고 웃었던 기억은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