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진 몰라도.

31세의 서유럽여행부터 32세의 캐나다 워킹홀리데이까지

by Heniverse 심혜린
왜요, 혼자 가실 수 있어요!
저도 신년 카운트다운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한 적 있고,
유럽여행도 혼자 다녀온걸요!


영국문화원에서 어떤 20대 중반 대학생이 해준 말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커리어의 권태, 인간관계의 피곤함, 알 수 없지만 간절이 이끌리는 새로움에대한 갈망에 사로잡힌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어딘가 갇힌 듯 답답해.


원래 전공은 상경계열이었지만 예술계열 일을 하고 싶어 큰 결심으로 전공을 바꾼 석사과정을 하던 때, 파트타임 학원강사와 프리랜서 마켓의 긱(gig) 잡을 시작으로 일을 한 지 7년차, 그리고 신분 없는 나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사업자 밖에 없다는 벼랑끝 생각으로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된 지는 4년차였다. 그간 성취에대한 강박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였지만 이제는 채찍질이 먹히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적용할 때임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다.




무더웠던 2024년 여름, 그래서 등록하게된 영국문화원. 정말 다양한 계기로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장일을 위해서 짬을 내서 오는 사람, 곧 유학을 앞두고 있는 사람, 중동에서 한국으로 발령난 가족을 따라와 영어도 배우는 사람 등. 내 주변에는 비슷한 경험과 비슷한 목표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만 가득했는데. 다양한 배경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특히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한 기자님은 퇴사 후 유학준비를 하며 미리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게, 붙임성이 좋았던 그녀와 지하철을 함께 타며 알게된 사실은 우리는 서로 같은 동네에 사는, 그것도 도로 하나를 건넌 곳에 사는 동네주민이었다는 것.


기묘하다.

비슷한 나이, 같은 동네, 무엇보다 그녀와 내가 나눈 대화 속에서 느끼는 감정선은 너무나 비슷했다. 그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사회적 신념에대한 배신감과, 더 나은 미래는 지금 한국 땅에 없다는 본능적인 자각. 그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교류하던 사람이 용기 있게 외국에 나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그 외에도 나에게 심심한 충격을 주는 사람들은 많았다. 처음 서술한 20대 중반의 대학생부터, 유럽여행에서 스위스의 한 택시기사님과 친구가 되어 '여행가게 되면 말해줘요! 제 친군데 정말 웃겨요. 소개해드릴게요.'라고 말하던 어떤 분까지.


아. 그동안 외국에 나가는 건 '어려운 일'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신념이 있었는데, 이렇게 가벼운 일처럼 생각한다고?


내가 알던 세상이 다가 아니구나가 깨지던 순간이었고, 내 마음 속에서도 어떠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31살이 되어 처음으로 멀리 떠나는 1달 간의 서유럽 여행. 어차피 7년차인 여름부터 안식년, 어떠한 압박도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겠다 선언했던 차여서 할 수 있었던 결심이다. 아직 외국인들과 말하는 것도 어색하고, 다른 인종을 보면 다른 생김새에 궁금함과 신기함을 먼저 느끼던 나였지만, 초두에 소개했던 20대 대학생의 울림은 강렬했다.


너도 할 수 있어, 너 사실 해보고 싶잖아.

난생 처음 10시간이 넘는 비행기티켓을 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날아가게 된다.



그리고 7개월 후, 2025년 4월. 나는 캐나다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1개월이 아니라, 1년이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수월하게 진행된다. 사실 1달 여행지에서부터 겪었던 일이 나를 180도 바꾸어놓았다. 이 글 속에 차마 담을 수 없을, '지구세계' 속의 나자신을 새롭게 인식한 순간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그 장벽을 뚫고 전해졌던 영혼의 울림.


나는 한국에서 길잃은 방랑자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지구 반대편에서 배경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넌 이 길 위에 살아있어.'라는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처음 그 사랑은 때론 혼란이고, 오해이고, 갈등의 형태를 띠기도 했지만. 결국 마무리는 '난 너를 완전히 이해해.'라는 따듯함이었다. 어떻게 감히 잊을 수 있을까. 그 소중한 순간들은 아주 찰나였지만 영원처럼 내 영혼 속에 박히었다.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는데,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이면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사실이다.


그저 낭만적이기만 한 여행이 아니던 1달의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용기와 설렘을 주었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봐!라고.


아, 재밌는 사실.


왜 하필 캐나다로의 결심이었을까? 최근 오래된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2019년도에 써놓은 글이 있었는데, '나는 캐나다에 갈 것이다. 그 광활한 자연,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자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써져있었다. 선명하게. 그 문구를 본 순간, 나는 세상이 내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어쩌면 나는 6년뒤의 이런 변화를, 이미 알고 있었는 지도... 여기까지 오는 여정은 멀었지만 결국 돌아돌아 당도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 가보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진 몰라도.


직관이 끌어다준 선택에는 항상 놀라운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런 선물이려나? 나는 가보려고 한다. 그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진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