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짝사랑인 줄 알았는데, 기어코 손에 쥔 나의 연대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귀엽고도 절망적인 기억.
120cm가 간신히 넘는 소녀는
선생님 추천으로 반장선거에 나갔지만 달랑 2표만 받고 떨어졌다.
한 표는 내 단짝,
나머지 한 표는 나.
사실 정말 간절히 되고 싶었지만
어릴 적의 나는 붙임성이나 사회성이라곤 없었다.
말수도 적고, 친구들과 친해지는 방법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인싸'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런 조용했던 나조차
'선생님 등에 떠밀려 나갔는데 고작 2표만 받고 떨어졌다'는 사실은 쪽팔렸었는지,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반장선거에 나갔다는 말조차도 부끄러워서 하지 못했다.
아이구.
바를 정자.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9년 그 봄엔
투표를 바를 정자로 했다.
채워지지 않고 균형을 잃은 지붕과 기둥, 불안한 두 개의 작대기는
그 이후로도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수치스러웠던 순간으로 묻어두기를 20년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를 했던 부모님이
드디어 한 집에 살게되었다.
우리는 원래 살던 충남의 한 작은 도시에서
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던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로 이사를 가게된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전학.
전학을 할 땐 세레머니처럼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도 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부끄러운 상황을 또 재생했다.
음- 그러니까,
당시 초딩4학년의 '기획'으로는 친구들을 웃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때 TV광고에서 밈처럼 돌아다니는 멘트가 있었는데,
장난스럽게 그 멘트를 섞어 나를 어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좋을까.
약 40명 가까이 되는 청중 앞에서 요망한 재롱을 떠는게 익숙지 않았던 소녀는 또다시 절고 말았다.
그래, 우리 업계에선 '전다'고 표현한다.
교탁 옆에서 가방을 메고,
그때당시엔 나름대로 대단히 꼼꼼하게
자기소개 멘트를 써놓은 공책으로
얼굴을 가려버린 채 인사를 한 것이다.
아이야. 그 작은 몸에 발성에, 교실이 얼마나 넓은데.
있는 힘껏 외쳐도 모자랄 판에 공책으로 입술을 가려버리다니.
머릿속으로 야심차게 계획했던 플랜은 내 부끄러움 앞에 약올리듯 무너졌고
난 그냥 조용히 배정받은 책상에 가 앉아버렸다.
그때부터 말하기, 자기표현이란 나에게 이루어지지 못한 꿈, 첫사랑 같은 거였다.
자이가르니크 효과Zeigarnik Effect!
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현상으로, '미완성효과'라고도 한다.
미해결된 상태로 나의 찝찝함과 도전정신을 자극했던 미완결된 숙제.
하지만 정말 사랑하길 원했고, 갖고싶었던 선망의 대상.
내가 바라보는 목소리라는 객체는 그런 하늘 위 별 같은 존재였다.
고개를 쳐들고 높이 바라만 보던 어린 소녀는 알았을까?
이렇게 목소리로 브랜딩해 먹고살고 있을 줄은.
가질 수 없던 것을 차마 욕망할 생각도 못하던 자리에서,
이젠 가진 것을 나누는 자리로 이동해있을 줄은.
1999년, 2002년의 두 소녀가 말한다.
"그렇게 안잡혔지만 잡고 싶더니, 결국 잡았네?"
헤니벌스HeniVerse
=혜린에서 따온 Heni + 운문, 시, 구절을 뜻하는 Verse의 합성어
=혜린이가 전하는 구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