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고픈와중에,저멀리손에닿지도않는달의모양은대체왜변하는거지?
인류의 기나긴 여정에서
직립보행이 대지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도구의 사용이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기술적 도약이었다면,
인간을 비로소 ‘인간’이라 부르게 한 진정한 사건은
아마도 지극히 무용한 의문이
처음 마음속에 스며들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생물학적 필연성에 따라
눈앞의 열매를 따고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는 일은
여타의 영장류와 다르지 않은
생존의 궤적 안에 머문다.
그러나 어느 날,
사냥의 피로를 내려놓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별은 왜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는지,
혹은 나는 왜 이 막막한 우주에
던져졌는지를 묻기 시작했을 때,
인간은 종의 경계를 넘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질문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질문들은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도,
육체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쓸모없음은
인간을 단순한 생명 현상에서
사유하는 존재로 밀어 올렸다.
그것이 진화의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오래된 착각이었는지는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정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답이 없다는 사실을 견디기 위해
던져진 질문들.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은 자주 멈춰 섰고,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지했을 것이다.
오늘,
생존과 효율이라는 시급한 소음들을
잠시 뒤로 미루고
스스로에게 조심스럽게 묻게 된다.
나의 영혼을 가장 오래 붙잡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
그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무용한 질문은 무엇인가.
어리석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이 질문은
어쩌면 인류가
생존이라는 거대한 감옥의
창살을 처음으로 더듬던
불확실한 몸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열매도,
추위를 막아줄 가죽도
가져다주지 못했던 그 의문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육신이라는 좁은 영토를
조심스럽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달의 차고 기우는 이치에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마음이 붙들리던 순간,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짐승의 논리를 넘어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낯선 문턱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이 비효율적인 경탄은
뒤늦게 시간을 엮어
질서라 불렸고,
계절의 흐름을 따라
문명의 토양을 일구었다.
설명은 언제나
그 다음에 따라붙었을 뿐이다.
가장 쓸모없어 보였던 호기심이
가장 강력한 생존의 도구가 된 이 역설은
질문하는 인간만이
우연히 감당하게 된
특이한 운명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 질문의 본질은
기술적인 탐구라기보다,
거대한 우주의 침묵 앞에 선
단독자의 미세한 떨림,
곧 경이에 더 가깝다.
세계를 소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해석의 성전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그 순간,
인간은 진화의 임계점을 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조각하는
실존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아직
그 문을 통과했다고 말할 만큼
확신에 차 있지는 않다.
다만,
그 앞에 서 있었던 기억만은
오래 남아 있다.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