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하나의 사실인가, 하나의 해석인가

존재, 사실과 해석 사이의 숨결

by Henri

눈을 감으면

먼저 호흡이 대답한다.

들숨과 날숨 사이,

그 한 뼘의 고요한 틈새.

거기 이미 나는 도착해 있다.

생각이 잉태되기도 전에,

논리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존재는 먼저 자리를 채운다.

증명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온기,

이름을 붙이기 전의 맨살 같은 필연.

창틈으로 새어드는 새벽빛은

아무 말 없이 세상을 깨운다.

새 한 마리의 노래도,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도

서로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궤적에서 ‘있음’을 되풀이할 뿐.

그 맑은 반복 앞에서 나는 속삭인다.

내가 마주한 이 세계는

정녕 실체의 얼굴인가,

아니면 내 마음이 흘린 그림자인가.

같은 하늘 아래서도

어느 날은 위로가 되고,

어느 날은 텅 빈 메아리가 되는 까닭은

세계가 아니라 내 안의 풍경이 먼저 물든 탓이리라.

존재는 돌의 거친 질감처럼

단단히 놓여 있다.

태어나고, 숨 쉬고, 필멸하는 이 굴레는

해석의 여지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위에 덧칠되는 삶의 색채는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슬픔이 고일 때 사물들은 납빛으로 가라앉고,

고요가 깃들 때 같은 풍경이

깃털처럼 떠오르며 빛난다.

세계는 변함없는데

시선 하나가 모든 배열을 뒤바꾼다.

그 찰나, 존재는 차가운 사실에서

뜨거운 체온으로, 다시 은밀한 이야기로 건너간다.

나는 존재를 물 위 달에 빗대었다.

하늘의 달은 고요히 머물지만

수면 위 달은 바람 한 점에도 일그러진다.

흔들리다 고요해지고,

고요하다가 다시 흔들린다.

하늘의 달이 ‘사실’이라면

물 위의 달은 ‘나의 해석’이다.

우리가 평생 발 디디는 곳은

대개 이 떨리는 달빛 위.

저마다의 얇은 막을 거쳐 본 세계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해석이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마음의 평화가 뱃속의 허기를 메우지 못하듯,

어떤 아름다운 의미도

흐르는 시간을 붙잡지 못한다.

존재는 언제나 현실의 바닥으로

우리를 조용히 되돌려 놓는다.

사색은 이 단단한 땅 위에서야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

땅을 밟지 않은 명상은

허공에 흩어지는 한숨처럼 힘을 잃는다.

나는 이 두 힘 사이의 떨림을

삶의 가장 은밀한 리듬이라 이름 짓고 싶다.

단단한 지면과 부드러운 물결,

주어진 조건과 선택의 여백.

우리는 그 사이를 오가며

균형이라는 이름의 춤을 배운다.

사실에 짓눌리지 않고,

해석에 취하지 않는

그 맑은 감각을.

오늘 나는 존재를 한 번의 호흡으로 받아들인다.

들이마시는 숨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

내쉬는 숨은 나를 지나 흘러가는 나만의 무늬.

들이마심이 없으면 내쉬음도 없고

내쉬음이 없으면 다시 들이마실 공기도 없다.

삶은 이 단순하면서도 끝없는 순환 속에

조용히 머문다.

존재는 완성된 조각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명상이다.

자각과 망각이 스치고,

깨어 있음과 놓침이 교차하는 물결.

나는 그 안에서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그저 맑게, 투명하게 머물고 싶다.

오늘의 숨결과 빛, 마음의 가장 가느다란 결까지

있는 그대로 감각하며

사실과 해석이 맞닿는

그 좁은 다리 위를

맨발로 천천히 건너고 싶다.

그 다리 한가운데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진실이 있다.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면서

동시에 멈추지 않는 해석이라는 것.

그리고 두 세계가 스치는 바로 그 순간,

삶은 잠깐, 아주 잠깐

자기만의 은은한 빛을 띤다.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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