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아 숨 쉬는 자리, 소유도 빌림도 아닌, 잠시 머무는 자리
나는 자주 이 질문을 숨 위에 올려놓는다.
“나는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잠시 빌려 쓰고 있는가.”
침묵이 고이는 그 자리에서 생각은 물러나고,
가슴의 낮은 오르내림과 손목의 맥박만 남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어지는 리듬을 바라보다 보면,
나는 어느새 주인이 아니라 관찰자가 된다.
‘소유’라는 단어는 단단한 울타리를 닮았다.
그러나 숨은 허락 없이 드나들고,
시간은 내 계획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나를 완전히 거느리지 못한다.
오히려 생의 흐름에 보폭을 맞추며 따라가는 쪽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가 철저한 임차인인 것도 아니다.
이 삶은 반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선택, 침묵, 망설임 하나하나가 곧 나의 얼굴이 된다.
누구도 대신 서 줄 수 없는 자리에서
나는 매 순간 나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느낀다.
나는 나를 소유하지도,
완전히 빌려온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나라는 존재를 잠시 맡아
숨 쉬는 자리에 와 있을 뿐이다.
파도가 모래 위에 잠시 머물렀다 돌아가듯,
나는 이 형체와 이름을 걸친 채 시간을 통과한다.
영원히 가질 수 없기에 더 오래 바라보고,
내 것이 아니기에 더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머지않아 사라질 것을 알기에
지금의 촉감은 더 선명해진다.
이 자각은 나를 대하는 태도마저 바꿨다.
소유물처럼 다룰 때 나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소모했다.
그러나 맡겨진 존재라는 느낌 앞에서는 속도가 느려진다.
휴식은 게으름이 아니라 돌봄이 되고,
멈춤은 숨 고르기가 된다.
결국 이 물음은 삶의 목적지보다 자세를 가르쳤다.
붙잡으려 애쓰지 말 것. 그러나 방치하지도 말 것.
흐름에 몸을 맡기되, 주어진 책임의 끈은 놓지 말 것.
하루 끝에 다시 묻는다.
나는 나를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버리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이 숨과 이 몸과 이 시간을
잠시 맡아 지나갈 뿐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짧은 머무름은 충분히 깊고 고요하다.
이 순간 어리석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내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꼬집었을 때, 아픔을 느끼는 '나'는 꼬집은 손가락의 주인인가, 아니면 비명을 지르는 손등의 주인인가"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