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데 실패했다면, 나는 내 존재를 '직무 유기'한 것인가
존재는 스스로를 사랑할 의무가 있는가
이 질문을 가슴에 얹으면,
호흡이 먼저 반응한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짧은 틈새에
문장은 조용히 머문다.
‘의무’는 무겁고 각이 서 있고,
‘사랑’은 붙잡으려 하면 흩어진다.
사랑을 명령으로 강제할 수 있을까.
특히 자신을 향할 때에도.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는 규범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을 대하는 법에는 서툴다.
버티고 견디는 법을 먼저 익히고,
마음이 메마른 뒤에야 문득 묻는다.
나는 나를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
자기혐오는 소리 없이 스며들어
삶의 결을 마모시킨다.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마음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도 무디어진다.
자신에게 온기를 건네지 못하는 손은
세계를 향해서도 굳어진다.
그래서 자기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다.
타인과 세계를 연결하는 가장 낮은 토대다.
여기서 사랑은
환호나 도취가 아니다.
무너진 날에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태도,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존재 자체를 폐기하지 않는 것,
넘어진 사실보다 다시 일어설 가능성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
감정이라기보다 반복되는 선택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는 선언이 아니라,
스스로와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약속이다.
삶이 표류하는 날에도
나를 위한 최소한의 여백을 남겨두는 일.
결국 존재는 스스로를 사랑할 의무를 지니지 않는다.
사랑은 명령으로 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자신을 완전히 방치하지 않을 책임은 지닌다.
스스로를 적대하지 않고,
삶의 연약한 이음새를 함부로 부수지 않겠다는 책임.
그 책임은 거창하지 않다.
아침에 다시 눈을 뜨는 일,
숨을 고르고 한 걸음을 내딛는 일,
흩어진 마음의 조각을 모아 하루를 이어가는 일.
이 작고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
이미 자신을 향한 신뢰가 깃들어 있다.
매일 우리는 조용히 묻는다.
오늘도 너와 함께 살아낼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대부분의 날,
불완전한 방식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감싸 쥐는 작은 온기 하나.
나 자신과 이 느린 호흡을 나누는 일.
그것이 존재가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 오래 지속되는 사랑의 형태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흉터는 존재의 오타인가, 아니면 가장 정직한 문장인가"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