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선택들은 어디에 머무는가

존재하지 않는 선택들의 숨결

by Henri

고요히 숨을 고르다 보면,

단선적으로 닳아온 삶의 결이 손끝에 닿는다.

이미 지나온 길보다,

차마 딛지 못한 길들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선택받지 못한 가능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이름 없는 기척으로 아직 주변을 맴돌고 있을까.

삶은 하나의 현실로 굳어지지만,

그 아래에는 수많은 세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

우리는 하나의 결정을 붙잡는 대신,

셀 수 없는 가능성을 놓아준다.

놓아준 것들은 바람처럼 흩어지는 듯하지만,

의식의 깊은 층에서 미세한 파동으로 남는다.

한밤중 밀려오는 그리움과 불안은

그 파동의 늦은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는 듯하다.

그곳에 가지 못한 도시의 빛,

말이 되지 못한 문장들의 온기,

선택하지 않은 삶의 리듬이 조용히 고여 있다.

그것들은 사건이 되지 못했기에 기록되지 않지만,

‘존재의 온도’를 형성하는 흔적으로 남는다.

인간은 살아낸 삶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살지 못한 삶의 그림자까지 끌어안을 때

비로소 하나의 형상이 된다.

이 그림자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를 건넌다.

발걸음을 늦추고, 시선의 방향을 바꾸며,

지금의 밀도를 선명하게 만든다.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들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현재를 향한 진행형의 속삭임이다.

그러나 그 속삭임에 머무는 방식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부재한 가능성에 잠기면 현재가 얇아지고,

밀어내면 삶이 경직된다.

이제 나는 붙잡지도, 외면하지도 않으려 한다.

숨이 오가듯 스쳐 지나가게 둔다.

그 미세한 흔들림을 동력 삼아,

지금의 선택을 더 또렷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선택들이 머무는 자리는

공간이 아니라, 찰나의 고요일지도 모른다.

호흡과 호흡 사이의 공백,

생각이 말이 되기 전의 투명한 틈.

그 자리에서 미실현의 가능성들은

후회의 무게를 벗고,

이해의 깊이로 변한다.

다시 숨을 고르고 발을 내딛는다.

등 뒤에 늘어선 수많은 ‘살지 못한 삶’들이

나를 밀어주는 감각 속에서,

이 한 걸음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내 그림자는 내가 걷지 않은 길의 무게를 알고 있을까"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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