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재구성: 과거를 발명하는 법

과거는등뒤에남겨진유물이아니라, 현재라는붓끝에서끊임없이덧칠해지는사적인신화

by Henri

기억은 서랍 속 낡은 사진첩이 아니라,

달빛이 스며든 얇은 종이 위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이다.

그 방울은 열릴 때마다 스스로 번져 나가

오늘의 숨결에 따라 색을 바꾸고, 가장자리를 떨며 퍼진다.

우리는 과거를 보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태어난다.

아픈 상처 위에 오늘의 온기를 불어넣어

흉터를 은은한 자수로 바꾸고,

흩어진 눈물의 조각들을 모아

‘이것이 나의 별자리였다’며 하늘에 새긴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연약한 영혼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부드러운 포옹이다.

모든 날것의 아픔을 그대로 끌어안으면

심장은 찢어질 테니,

우리는 그 아픔을 노래로 감싸고,

비극을 서정으로 녹여내며,

흐린 유리창 너머로 빛을 비추듯

과거를 다시 비춘다.

과거는 단단한 돌이 아니라,

내 손끝에서 끊임없이 물결치는 수채의 강이다.

오늘의 내가 붓을 들 때마다

강물은 새롭게 굽이치고,

잊힌 만(灣)들이 다시 드러나며

내일로 흘러갈 길을 열어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일을 어떤 색으로 물들이고 있는가’이다.

그 색이 푸른 용서라면,

그 색이 장밋빛 희망이라면,

그 색이 은은한 달빛의 위로라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기억은 창조이다.

고독한 밤마다 우리가 혼자서 짓는 가장 아름다운 시(詩)이다.

그 시 한 줄 한 줄이

우리를 용서하게 하고,

타인을 안아주게 하고,

아직 오지 않은 새벽을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게 하는

유일한 빛이다.


Henri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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