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가장 ‘있다’고 느끼는가

나는 내 삶의 주인이면서, 동시에 가장 잦은 이방인이었다

by Henri

나는 언제 가장 ‘있다’고 느끼는가

이 질문을 가슴에 올려두면, 숨이 먼저 반응한다.

들숨이 흩어진 나를 모으고, 날숨이 소음을 밀어낸다.

이 물음은 답을 강요하지 않고, 지금으로 돌아오게 하는 신호다.

나는 그 울림에 멈춘다.


살아 있으면서도 자주 부재한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어제와 내일 사이를 방황한다.

빼곡한 일정과 조바심 속에서 하루를 통과한다.

그러다 판단이 가라앉는 틈이 열린다.

창가의 볕, 찻잔의 김, 흉곽의 리듬.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있음’이 선명해진다.


한때 존재를 증명해야 할 과제로 여겼다.

더 이루고, 더 단단한 이름을 가져야 허락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쌓은 나는 위태로웠다.

내려놓는 순간 뿌리가 드러났다.

취약함의 용기, 모름의 정직, 도움의 낮은 목소리.

작아질수록 존재는 뚜렷해진다.


‘있음’은 타인과의 공명으로 깊어진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때, 말을 끝까지 들을 때.

침묵이 대화가 될 때 경계를 잊는다.

서로의 숨결에 반사되어 우리는 얼굴을 얻는다.

가장 소박한 순간이 잦다.

설거지의 서늘함, 계단의 진동, 밤공기의 스며듦.

삶은 작은 감각의 점들로 이어진다.

그 점들이 연결될 때, 나는 시간 위에 선다.


요즘 의도적으로 멈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풍경을 해석 없이 본다.

세계가 이름 이전의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그 앞에 머문다.


내가 가장 ‘있다’고 느끼는 때는, 삶을 붙잡는 손의 힘을 푸는 순간이다.

도망치지 않고 과장하지 않은 채, 지금의 무게를 수용할 때.

그 고요 속에서 나 자신에게 도착한다.

그 도착은 늘 새롭다.

숨처럼 조용히, 분명하게.

존재는 나를 통과한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나는 왜 이미 도착해 있는 곳을 향해, 그토록 숨 가쁘게 달리는가"


Henri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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