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라는 파동, ‘삶’의 문턱에서
나의 존재는 누구에게 ‘사건’이었는가.
이 질문을 생의 한가운데 올려두고 숨을 고르면,
문장은 곧 형태를 풀고 하나의 파동이 된다.
들숨에 부풀고 날숨에 가라앉는 미세한 물결.
나는 그 흔들림 위에 잠시 머물며,
‘나’라는 존재가 타인의 생에 남긴 자취의 방향을 더듬는다.
우리는 삶을 매끄럽게 이어진 이야기로 믿는다.
그러나 타인의 세계 속에서 나는 결코 선형적이지 않다.
나는 예고 없이 스며들었다가 고요히 사라지는 찰나이며,
누군가의 시간 위를 스친 작은 진동이다.
이름은 흐려지고 얼굴은 희미해질지라도,
한때 수면을 흔들었던 파문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물은 다시 고요해지지만, 그 고요는 언제나 흔들림을 지나 도착한다.
부모에게 나는 생애 처음 맞이한 낯선 계절이었다.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열리던 날,
그들의 삶은 눈에 띄지 않게 꺾였다.
나는 사랑의 시작이었고 동시에 책임의 무게였다.
그들의 밤과 꿈, 침묵과 기도는
그때부터 다른 배열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오래 붙들고 싶은 기억이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스쳐 간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늘 큰 소리를 내며 찾아오지 않는다.
다정한 시선 하나, 무심히 건넨 문장 한 줄,
우연히 닿은 손끝이 누군가의 하루를 미세하게 틀어 놓는다.
우리는 스스로 남긴 흔적의 크기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삶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타인의 기억 속에서 계속 쓰인다.
질문은 다시 나를 향한다.
나는 과연 나 자신에게 사건이었는가.
관성에 실려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나는 종종 나에게 도착하지 못한 채 지나간다.
그러다 설명하기 어려운 마찰이 마음을 두드릴 때,
“왜 나는 이 궤적으로 걷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비로소 도착한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사건이 된다.
선택은 무게를 얻고, 침묵은 책임의 얼굴을 띠며,
삶은 더 이상 가볍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진짜 탄생은 몸이 세상 밖으로 나온 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자기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문턱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우리는 흐름에 떠밀리는 존재가 아니라,
방향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가 된다.
질문은 이제 미래를 향해 열린다.
나는 앞으로 누구에게,
어떤 온도의 사건으로 남을 것인가.
거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좋다.
다만 상처를 흘리고 다니지 않는 주의,
타인의 시간에 불필요한 균열을 만들지 않으려는 사려 깊음.
말의 온도를 재고 침묵의 무게를 가늠하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하나의 윤리를 살아낸다.
존재는 이미 사건이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세계의 수면에 파동을 남긴다.
그 파동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거창한 사명이 아니라,
매 순간 깨어 있는 조용한 응시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진행 중인 미완의 사건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시간 속으로,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흘러 들어간다.
이 순간 어리섞은 물음을 다시 해본다.
“어제와 똑같은 길을 걸었는데, 왜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만나지 못했나”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