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은 죽여버리고 싶다의 허용 가능하고 자가 납득한 표현으로 들린다. 내 경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렇다. 굳이 내 경우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짓은 비겁하다. 관대하지 않은 눈들을 지레 의식해서다. 그 눈들은 내 망막 안에도 촘촘한 다수 일체를 이룬다. 변명과 회피가 아닌 말하기란 가능은 하지만 자꾸 풍선처럼 달아난다.
안으로만 꼬여들어간 사람이 안에 쌓이는 재를 꼬챙이로 긁어 후벼 쑤셔내 버릴 필요, 애써 이를 반복하는데 어딘가서는 왜 다들 알아듣게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냐고 한다믄, 꼬챙이를 훅 꺼내 허공에 휘두르고 싶지 그만. 꼬챙이로 속을 긁어낸 적이라곤 없는 이는 여태 큰 소리로만 말해온 것일까.
분노와 충동 조절 장애를 앓아왔다.
필요한 순간 바로 제때에 분노와 충동을 왜곡하지 않은 그대로 남들이 다 알아먹게끔 표출하지 못해 온 후유증까지를 말아 앓으며 안으며.
들어간 것은 내향적인 것이라기보다 안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정신 의학서에서 정신증상에 대한 설명도 과잉 쪽에 치우침이 보인다. 각종 과잉, 과대망상, ADHD.
말려들어간 달팽이의 혀를 잡아 끌어내려는 음모. 몸을 긴 혀로 만들어선, 기는 연습을 해.
이 모든 걸 놓고 그냥 살고 싶다면 그냥 삶이 아닌 천사의 레일.
삶은 눈부시게 끈적인다. 눈부시거나 끈적이거나 하나만 하긴 어려워.
밀도와 거리의 문제. 숨 쉬고 꼼지락거릴 반경 확보의 이슈. 촘촘하면 깎아내리고서야 분이 풀리는 서로.
간격을 벌릴수록에 갑자기 애틋해지고 뜬금없이 칭찬도 한다.
우아한 눈인사의 거리를 확보하고 싶어 정복과 정벌에 나선 결과로서의 그랑 뮈제.
사이를 벌려놓으면 서로를 뜯어먹지 않아도 되니, 이산가족이라던가 다시는 못 만날 사이가 되면 관계의 가치는 사소한 디테일마저도 영구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