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피라미드 역에서 1번 출구로 나가면 오페라.
슈와젤 통로
섭정 때는 카지노로 이후에는 시인의 책방이 되기도 했던 통로. 통로 전체에 지붕이 씌워져, 창문을 열어도 날씨를 볼 수 없었다.
오페라와 루브르 근처인 중심가여선지, 이 한식당에 드나드는 사람들 행색으로 눈이 늘 절로 향하곤 했다. 여기는 공기 중 꽃가루처럼 멋이 흘러 다녀서는, 그냥 걷기만 해도 다 그 가루에 버무려지고 마나? 숙소의 위치 때문인지 이번 파리행에선 유독 멋쟁이들이 수북하여, 슈와젤 파사주라 불리는, 전체를 반투명의 지붕으로 덮은 통로 지역의 숙소를 빠져나가다 보면 그 통로가 마치 패션쇼의 현장처럼도 여겨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조금 멋쟁이라던가, 우아하게 차려입고 살짝 포인트를 준 고급 멋내기의 달인이라던가 하는, 흔히 보는 멋쟁이의 부류가 아니라, 아예 오뜨 꾸뛰르와 완전히 같은 차림새와 화장으로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 목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라면 다들 눈길을 던질 그런 행색이 파리에선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우린 자리를 잡고서는, 대구탕과 순두부찌개 그리고 음료로는 그라브 와인을 주문했다.
"막걸리 안 하고?"
순두부찌개와는 막걸리가 어울리지 않나 하였더니,
"아무리 밖에 나와 있다지만, 저 막걸리가 공들여 특별히 빚은 그런 것도 아닐 바에야 여기서 이 돈 주고는 마시기 싫어."
"아아, 크....."
그럼 이 와인은?
"이거 좀 괜찮은 와인이라, 우리나라 가면...."
"그라브 처음 들어보는데? 이게 좋은 와인이란 걸 알아본단 말이지? 놀라웁군. 이런 박식이라니!"
"그라브는 오 메독처럼 지역 이름이야."
"오오"
"아 뭐 내 얄팍한 상식이란, 지대넓핧이라고 할 수 있지. 결코 그 어느 깊이로도 조금 얇게라도 들어가지 않는, 광범위한 수박 겉핥기."
(그러면서 핥는 시늉을 내 보임.),
그러는 사이 양쪽 테이블의 색다른 모습들이 포착된다.
먼저 오른쪽.
두 명의 프랑스인.
그 둘은 비빔밥을 시켜서는, 어느 소스장도 퍼 넣지 않은 채, 젓가락으로 맨 위의 야채들을 하나씩 집어 따로따로 음미한다.
그 모습에 경탄하며 나를 숙고한다.
하긴 나도 밥과 국을 잘 섞지 않는 편이지. 밥 따로 설렁탕 따로. 결코 말지 않지. 저들의 비비지 않는 태도란 나의 이런 성향 비슷한 걸까?
다양함을 존중하려 평소엔 애쓰던 동행인마저 이렇게 말했다.
"마구 비벼주고 싶네. 비빔밥이란 이런 거다 하며."
거의 한국인으로 구성된 직원들 가운데 니콜라스 케이지와 유재석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의 프랑스인이 한 분 끼어 있었다. 이 직원은 넓고도 긴 식당의 통로를 오갈 때 눈이 마주치면 가끔 상냥한 미소를 짓곤 하였는데, 안경알과 콧날과도 잘 어울리는 그 웃음의 의미는 몰라도 좋았다. 파리고 어디고 웃음에 이유 같은 걸 달 필요는 없는 거다.
썩 괜찮은 대구탕. 우리나라에서 먹을 때에 비하여 1인분이 1.5인분은 되어 보였다.
한편 왼쪽 테이블에는 일본 국적의 남녀 한 분씩 앉아 있었는데, 이분들은 이 식당 식사에 프랑스인들보다는 한결 익숙해 보였다. 이들은 비빔밥과 전 등 좀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가 다 먹지 못하고 포장을 부탁했다. 한국 여자 직원이 와서 능숙하게 포장을 하는 와중에 물었다. 비빔밥 포장 안에다, 반찬으로 나왔던 나물들도 다 같이 넣어도 될까요? 하고. 일본 여자분은 괜찮다고 했고, 맞은편의 그녀의 동행이 웃으며 익숙한 불어로 추임새를 넣었다. "코리언들은 보통 몽땅 쌔려 넣지."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와는 무관하게 통로를 오가며 서빙하던 나 콜라스 케이지와 유재석을 닮은 프랑스 직원이 또 상냥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지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남에게가 아니라 혼자서 짓는 표정에마저 잔잔한 웃음이 머금어져 있다.
이 식당에 그다음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프랑스인들은 비빔밥의 나물들을 섞지 않고 조용히 집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