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면...... 멈추면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신 스님의 말씀을 좇아 잠시 잠깐이야 멈출 수도 있겠지만, 그다음 발을 떼지 않고 살 수는 없다. 線을 만들어 이어야 하는 삶에서 매 순간 點으로 살아보길 시도한 나날들, 그런 '순간 열반'은 마취제를 계속 순간마다 주입하는 과정이라서, 마취제 공급원과 연락 끊기는 날엔 열반에서 지옥으로 하강하게도 된다. 그래서 현실과의 균형이니, 드러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조화니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되지만, 균형 조화라는 말은 얼핏, 단련되지 않는 사람의 평균대 올라서기처럼 아찔하다.
산책은 내게 생존의 최소 단위 중 하나로 되어 있다. 공기가 희박한 삶에서 정신적 산소의 자가 생성, 두 다리는 발전기가 되어 지표를 건드려 지축의 생명력을 끌어올린다. 이렇게 몸이라는 공장을 돌려주면 뇌는 주변의 들음직한 음률들을 빨아들여 탄력을 얻는다. 걷지 않는 뇌는 어디서 산소를 사 와야 할지 모른다.
심장이 무너진 어떤 날도 두 다리는 심장을 대신하여 피를 펌프질 한다.
인형극제의 나날들이 거듭되던 어느 날 어김없이 뫼즈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지는 햇빛이 들꽃 위로 갸웃거리는 시간.
근 1년 사이 매일 몇 킬로의 산보로 단련된 내게 이제 이 강변의 거리는 심리적으로 이전보다 크게 축약되었지만, 지난번까진 그렇지 않았다.
기왕이면 물가를 걸어야 한다. 강은 내게 물의 생명력과 대화를 건네 오고 나는 강의 물결과 그 세계에 속한 것들에게 시선을 주며.
뫼즈 강변을 몇 번째 걷다 보니, 일상에서 걷는 천변이 내게 늘 뫼즈를 불러오기도 했다. 뫼즈라는 이름을 안 지는 퍽 오래되었다. 강의 폭도 풍경도 다르지만, 우리 동네의 왜가리와 백로, 해오라기 그리고 뭍 꽃과 풀들이 주는 정감은 먼 나라의 강변과도 겹쳐 붙는다.
여행과 일상.
여행지에도 일상에 있던 것이 그대로 발견되기도 하는데, 여행이라는 샘플링에서만 자극과 감흥을 받게 되는 것은, 여행지가 먼 외딴곳이라는 사실 외에도, 그곳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고 호들갑스러운 풍요가 될 만큼, 떠나기 전 일상이 빈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체로의 일상은 풍요롭다 못해 범람하던 나머지 오히려 빈곤해지고야 말았다는, 살점이 더럽게 많이 붙어서 뜯어도 뜯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 풍요 돼지가 포크를 등에 꽂은 채 널브러진 그것이었던 거다.
여기가 내게 치유의 강변이라 불리게 된 데는 잊을 수도 없는 유래가 있다. '샤를르빌 갈비뼈' 사건이라 내가 부르는 그것이다.
몇 년 전, 이 도시에서 인형극 관계자분들과의 샴페인 파티.
평소엔 안 마시던 술이라는 것이 문제다.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잔을 거듭하다가 나는 집에 어떻게 도착했나를 기억할 정도의, 그러나 그 이후는 선명하지 않은 일종의 심신 미약 상태에 들어갔다.
깨어났을 때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들, 스카프. 바지에 붙은 금속 장식은 고리가 해체되어 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가?
작은 금속 고리 따위는 어찌 되어도 그만인 것이지만 당장에 문제 되는 것은, 갈비뼈가 심하게 아파왔다. 웃어도 몸을 기울여도 무얼 해도....... 갈비뼈가 그렇게 온몸과 첨예하게 연결되어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듯이. 내 갈비뼈의 존재감은 그때가 최고였다.
증상으로 봐선 금이 가거나 부러지거나.
검색으로 깨달은 것은, 이런 경우 병원에 가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거. 갈비뼈에 부목을 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상황이 안 좋았다. 나는 당장 그로부터 이틀 후쯤 배낭 짐을 지고 파리를 거쳐 터키로 가게 되어 있었던 그러니까 샤를르빌 체류 10 일 중에서도 그 사건은 끝 무렵이라 숙소에서 쉬며 요양할 형편도 아니었다.
이런 상태에서 당장 할 일은 갈비뼈를 어떻게 하는 일은 당연히 아녔으니 그저 술 깨기에 전념하는 일 정도?
그때 술 깰 겸, 기력 되찾을 겸 저 강가를 걸어갔는데, 그 거리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프니 패잔병의 느낌으로 천천히 걸었다.
올해 다시 걸으니 그때 체감 거리의 3분의 일 정도?
갈비뼈는 귀국하고도 한동안 아파서, 한 달은 많이 아프고 이후에도 아픈 느낌의 흔적이 한 달 정도 더 갔다.
이제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가는 길이란 얼마나 호젓한가! 단지 지금은 운동량 부족을 채울 겸 걷는 호사스러움이란!
나무들엔 여기저기 저런 간이 꽃다발이 꽂혀 있었다.
걷다 보니 저기 고개를 수그린 뭉실뭉실한 털들은 다 뭔가?
양들도 사람을 궁금해한다.
프랑스니 여기저기 양이 있을 법도 하지만,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몇 배 크기의 나라니 어디에나 양이 있지만은 않을 거며, 특히 이 샤를르빌이 양과 딱히 어울리는 지역인지는 알 수 없다.
내 머릿속 엉망인 지리부도. 샤를르빌이 속한 샹파뉴 아덴 지역은 샹파뉴란 이름처럼 그저 샴페인이 어울리는 지역 정도라는 것이 내 앎의 전부.
쫑긋했던 양들의 호기심은 곧 고개를 숙이고 풀 뜯기에 전념한다. 저들은 생계에 충실하다.
걷다 보니 전에는 보지 못한 조형물.
여기가 오리들 구역이기는 하다.
오리 옆구리엔 이름표도 붙어있다.
나는 사튀르냉이라고 해요....... 2016년 산 오리군!
저 모든 오리들이 사튀르냉은 아닐 거고.
강변에서 올라와 다시 인간들의 구역으로 돌아가는 행로를 택해 걷는다.
남의 집 정원의 이런 코스모스를 왜 찍었냐 하면 그 가공할 크기 때문였는데, 사진으로 보니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저 꽃 얼굴이 실은 무척 컸다.
사자상이 둘 보였고, 양쪽 사자의 표정이 달랐다. 특히 무심해 뵈는 사자.
새 모양 구름.
걷다 보니 랭보 중학교.
앞에 랭보 동상이 있다.
이전에 누군가 발에 휘갈겨 놓았던 '닥쳐!'라는 낙서는 지워져 있다. 발톱을 새로 칠한 것 같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랭보.
저 바람구두는 닥터마틴인가?
손에 든 펜은 어째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지......
어딘가 깃털 펜 같은 깃털 구름.
미지의 생성자 랭보가 아직도 허공에 휘갈겨대는 시는 한 번에 만 마리씩의 학이 되어 날아간다.
내려앉는다.
산보의 마무리는 역시 지역 맥주.
여기는 벨기에 국경 가까운 지역이라 맥주가 만만찮게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