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에서 주워올린
앞으로 죽죽 걸어가는 순간에도, 앞을 향하여 걷는다는 기분을 가져본 일이 없다는 걸 오늘 새삼 인지했다.
울타리 옆을 걷는 기분. 그게 나무나 관목이라도, 꽃더미라도, 식물이 아니라면 그냥 시간이 늘어선 곳을 지나가는 느낌. 항상 뭔가의 옆에서 걷는 느낌이었다.
오늘 저녁은 시간의 울타리 옆을 지나왔다고 말해야겠다.
어떤 가상의 옆을 지나면서, 지난 10년 돌이켜보기 같은 것을 자주 한다. 지금의 지형을 찾으려는 노력 비슷하다.
2014, 2015년 사이, 갑자기 주변에 새로운 사람들이 연거푸 나타났고 그것이 무리의 형태를 띨 때조차 왕왕 생겨, 이제는 내가 고독을 살짝 졸업하고 사람들의 바다를 만나려니 했었다. 삶의 흐름이 비로소 바뀌어 이 모드가 그래도 10년은 가겠지 했다. 지금 와 보니 딸랑 저 두 해 뿐이었다.
다시 건기를 맞아 목이 마르다.
오늘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추워진 저녁을 타고, 허벅지에 간간이 저릿거리다 멈추는, 통증도 아닌 어떤 느낌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픈 것은 아니고 거북하지도 않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신호, 그렇지, 신호라고 부르는 게 가깝겠다. 이 뭔지 모를 신호가, 드나듦이 무척 적어진 삶의 손님이나 우편물처럼도 여겨져 반가웠다. 고지서라던가, 나 이전에 언제 살고 있었을지 모를 분명찮은 수취인에게 온 것이라도 상관없다. 무언가가 와서 두드렸다는 것이 정확히 기분이 좋아져,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걷다가 이 느낌이 움찔움찔 와주었으면 했다.
롤러블레이드를 타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공간에서 하다못해 이렇게 몇 줄이라도 적어갈 때면, 흡사 땅에다 발을 굴러 잠깐씩 올라타고 싱싱 움직이는 기분이 들면서, 이 순간만큼은 단절하고 단절하고 놓여나 숨을 쉬어 본다.
불찰에 의해 본의 아닌 명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앱을 깔았다가는, 일주일 치 체험 후 곧장 일 년 결제되는 것을, 결제하시겠습니까?라고 친절히 물어봐 줄 줄 알고 가만두었다 그만 그냥 결제가 되어 버렸다. 취소하러 애쓰다가 애가 쓰이느니 그냥 마음을 비우고서, 진짜로, 앱의 목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숨을 쉬고 이완을 해보기로 했다. 누워 하는지 앉아서인지 정석은 모르겠는데, 그냥 걸으면서 한다. 잠시지만, 약간은 고요해지면서, 보이지 않던 나무줄기들이 몇 그루 더 눈에 띈 것도 같다. 앱에서도 졸졸졸, 실제 옆 시냇물 소리도 졸졸졸 합주를 해대는 배경 속에, 원치 않는 마음의 움직임이나 덩어리들이 흉측하니 잘 보였고, 굳이 그걸 따라 내 버리느니 그냥 바라보며 안쓰러이 여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