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돌프의 난로

by 래연





“자, 이제 파트너랑 연습하세요.”

디아나가 선포한다. 방금 오늘 배운 동작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시범이 끝났다. 살리다 아트라스 히라다 데레 차 salida atras girada derecha, 빠라다 레쏠루씨온 모르디다 parada con resolucion mordida, 마치 ‘레몬크림소스를 곁들인 연어 스파게티’ 같은 요리 이름처럼 기다란 이름을 가진 탱고 동작들, 이 용어들을 디아나가 유창한 스페인어로 줄줄 읊을 때마다, 이런 동작들을 섭렵하면, 그동안 마치 체조처럼 건조하여 그 밥에 그 나물로 데면데면했던 탱고가 다른 격으로 상승해갈 것 같다. 다른 아르헨티나 유학 출신의 강사들도 레슨 때 스텝을 ‘운 도 뜨레스(하나 둘 셋)’식으로 부르지만, 특히나 디아나가 이런 비급의 주문(呪文) 같은 원어를 읊조릴 때마다, 이 이민 3세에게서는 남미의 향기가, 달빛 담긴 히비스커스 꽃처럼 묻어난다.



파트너랑 연습하세요, 이 팡파르와 더불어 다들 파트너를 찾아 동작을 맞춰보느라 부산 맞다. 이미 매의 눈으로, 모든 동작의 세부 포인트를 집중하여 익힌 후, 발들의 위치까지 그려가며 꼼꼼한 필기를 마친 내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는 건 이 때다. 뒤를 딱 돌자마자, 어느새 언제나처럼 그가 있다. 그는 디아나의 두 번째 레슨에 처음 나타나서는 이후 죽,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내 뒤에 와 있다. 그리하여 모든 동작의 첫 연습 대상은 항상 ‘그’이다. 이렇게 된 것이 하도 티 안 나게 자연스러워 같은 일이 서너 번 거듭되고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그는 우뚝 키가 크다. 나보다 훨씬 큰 남자와의 춤은 이런 거구나 싶다. 큰 키만큼 내 무게를 많이 지탱해 줄 것 같은 기대감. 설혹 현실의 그는 미덥잖을지언정.

레슨 중간에 디아나가 그의 파트너와 시연을 해 보인다. 다들 뒤로 물러서 두 선생에게 무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내주고는 자리에 앉는다. 흘깃 그를 본다. 고급스러워 뵈는 스웨터에 욘사마 목도리. 등을 벽에 기댄 채 무릎을 감싸 안은 모습, 잡념 없이, 잠시 편안해 보이는 그가 문득 소년 같다. 그 안에 잠자던 생기가 살짝 스며 나온다. 나보다 여덟 살은 더 많은 이 중년 남자. 동작들을 연습하는 동안만큼은 중년 신사가 아니라 일반 대명사인 그냥 남자가 되곤 한다.



“그나저나 집중력이 엄청나세요.”

레슨이 끝나고 주말 밀롱가에 합류하기 전 김밥으로 요기하러 가면서 그가 말을 건넨다. 낯익고도 낯선 단어, 집중력. 하도 오래전 일이라 이젠 낯설어진 단어, 집중력. 어릴 때의 나는 분명히 그랬다. 자폐아 같은 집중력이 있었다. 어떤 저녁엔 책에 골몰하여 불 위의 냄비가 타서 연기가 온 방을 채울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거의 항상 그런 감각 상실 상태에서 살았다. 하지만 커서는 이렇듯 맘 편하게 뭔가에 몰두해 본 적이라곤 없다. 그는 나로부터, 나의 어린 시절을 소급하여 만나고 있는 것만 같다. 바깥일과 초조와 분주로부터 면제되어 있던, 존재 자체의 향기만으로 가득했던 실낙원, 그가 거기로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와의 지난 일들을 회상하니, 기억이란 프로그램의 수작을 알겠다. 그것은 더러 스스로 버그를 가장한 위장술을 펼치곤 한다. 이 프로그램은 때로 사건 간의 연결을 흐릿하거나 성기게 함으로써 욕망의 동기들에 로맨틱하거나 신비한 후광을 빚어내곤 한다.

‘시스테마 로돌프’에 내가 등록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시스테마 로돌프의 워크샵 프로그램은, 그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나의 위시 리스트에 올라 있었으나 하필 등록 시점이 그때가 된 건, 그의 출현이라는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벌써 반년 전부터 이미 내 주변의 땅게로스들(탱고 추는 사람들)은 유행처럼 차례로 로돌프를 거쳐 가고 있기는 했다. 땅게로스들이란, 신흥 워크샵이나 레슨을 자랑스러운 이력처럼 덧붙여 나가며 철새처럼 몰려다닌다. 이들은 탱고 동작의 팁이나 비기를 하나라도 더 소지하여 항상 최신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웬만큼 알려진 인스트럭터들을 한 번 씩은 섭렵하곤 한다. 이때는 로돌프가 개중 최신이었다.












이곳의 수장 디아나는 아르헨티나 교포다. 이국적으로 또렷한 윤곽에 검은 눈동자와 머리칼, 한국 핏줄 특유의 섬세함이 어우러져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답다. 이런저런 페스티벌에서 그녀의 춤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탱고는 공작새의 깃털을 뽐내지 않는다. 그녀의 춤은 미리 준비된 것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대신에, 순간순간 자신의 안으로부터의 느낌을 여과 없이 고스란히 몸으로 그려낸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설명하거나 잘 보이기 위해 꾸며내지 않는 춤. 그녀의 춤은, 춤의 본질은 기교나 화려함에 있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자신의 말을 하는 춤, 그것은 결핍 없이 자기 영혼을 동시통역하는 자의 특권이다. 그런 춤에는 꼴까다나 볼까다처럼(연습을 필요로 하는 난도 있는 동작들), 당시 유행하던 최신 동작들이 도리어 군더더기가 될 법도 했다. 꾸밈이라곤 없이 한 개 한 개의 아름다운 걸음이야말로 가장 우아한 춤이다 싶었다. 그녀의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이유로 디아나의 레슨을 찜해 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가장 혹한의 겨울에 레슨을 신청한 건 약간은 우연을 가장하여 그와의 교감의 장을 만들려는 수작이었을 거다. 내 기억은 살짝 모른 척하겠지만 말이다.


억지로라도 기억을 조금 더듬자면, 이 동호회의 오랜 단골인 그가 게시판에 수강 신청한 것을 보고 얼른 내가 선수를 쳤던가 혹은 나의 가입인사와 강의 신청을 본 그가, 그로서는 더 들어도 안 들어도 그만인 강의를 재수강한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 쪽이었는지는 정말 분명치 않다.

이보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첫 레슨에는 불참하였으며 두 번째 레슨부터 약간씩 늦게 도착하였다는 점이다. 내가 로돌프의 난로 앞에 앉아, 골목들로부터 몰아온 한기(寒氣)를 녹이며 디아나의 설명에 귀 기울여 열심히 필기할 무렵이면, 지하로 통하는 로돌프 스튜디오의 계단 위에 그가, 영락없는 겨울의 방문객 같은 모습으로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내곤 했다. 바로 내가 정면 주시하는 디아나의 옆과 뒤 삼면의 거울을 통하여, 그의 도래는 숨길 수 없이 미끄러져 들어와 비추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