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의 주소지

by 래연







중국집의 뒤풀이. 이 마지막 만찬,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까지나 그의 수호천사처럼.

“그런데 대체 원래는 뭐하시는 분이세요?”

착석한 지 얼마 안 되어, 누군가 대뜸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마치 질문이 내게로 온 것처럼 당혹스럽다.

“저번에 전시를 하셨잖아요. 또 가르치는 일도 하신다면서요?”

그런데 대체 하나의 인간이, 하나 혹은 두어 가지의 타이틀로 정의될 수나 있는 것인가?

그는 그리 당황치 않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다는 듯 얼버무렸다. “아 뭐 그냥 이것저것 해요.”

순진한 듯, 하지만 어딘가는 단련된 듯한 멋쩍음은 위장된 에티켓일지, 대꾸를 마치고는 엄지로 코를 움켜쥐고는 콧물을 훔친다. 지금의 그는 중년복 같은 아웃도어 상의에 자기를 은폐중이다.



그의 대답이 틀리지는 않지만 대체로 불성실한 답변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물어보는 자가 좀 더 제대로 알고 싶었다면 검색창만 두드려 보아도 될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만큼 가볍고 무성의한 질문에는 그만그만하게 적절한 답이었을 것이다.

그 앞에서는 별 무관심을 가장한 채, 신상에 대한 어떤 질문도 그 앞에서는 결코 던지지 않지만, 나는 그의 전시회에 다녀온 날 저녁 내 수준에서의 검색을 마쳤다. 그의 약력, 저서, 직업, 가족. 인터넷 세상이란 그의 가면과 망토를 얼마든지 묵살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세상에서는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지위에 있었다. 멋쩍은 표정 너머 억압된 분노와는 이질적으로. 그의 이력은 명문대 유학으로 이어지다가 최고직업인과의 결합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단지 어느 순간 그의 관심이 자기 전공을 넘어 사방팔방 뻗어 나간 점이 이례적이었다. 회계학자이기도 한 피아니스트가 한편으론 점성학 연구를 집대성했다던가 하는 경우에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본래는 천체물리학자로서 순수과학자였던 그는 어느 날 뉴욕의 미술관에서 수학과 미술의 연계성에 눈뜨면서 뒤늦게 미술 독학을 하여 화가로 데뷔한 데다 이러한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보통 사람들 속에 잠재된 창의성을 스스로 끄집어내는 길잡이 역할로 교육적 실험까지를 하는 중이었다. 때론 작곡을 시도하기도 했고 미식가로서 맛 탐험을 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 넓었다.



그런데 왠지, 왠지 몰랐다. 유례없는 다방면의 이력을 거느리고도 누구 앞에서고 그 무엇도 뻐길 의욕이라곤 없어 보이는 그를 가까이서 보면, 자기가 이러저런 경로로 뒤집어쓰게 된 온갖 허울들을 일순간에 벗어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벗지 않을 그것들을 가상의 세계에서는 이미 수차례 벗고 추위에 벌벌 떠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혹은 종국적으로 벗어야 할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계속 새로운 가면들을 발명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가 결정적으로 그의 무엇에 사로잡힌 것인지는 조금 미스터리하다. 누군가의 멀뚱하고 쌀쌀맞음에 마음이 끌릴 수 있는가 하면, 바로 내가 그렇다. 그가 좀 더 젠틀했다면, 탱고건 사교술이건 좀 더 능숙했다면 나는 그에게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앞에 둔 그의 뭔지 모를 어색함,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공되기 전의 모습이었다. 당혹한 채, 자기를 딱히 변명치도 못하며 약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게 고작인 어린 시절, 어른들은 내게 쌀쌀맞고 저밖에 모른다고 탓했다. 바깥으로부터의 요구에 적응된 바 없는 단지 하나의 덩어리로서, 자기감정을 스스로 번역하여 남이 알아듣게끔 표현하는 일을 습득하기 전 단계에서만, 나는 시공간에 제대로 거주했던 느낌이다.



아주 꽤 오랫동안 나는 사람들의 미추(美醜)와 희노애락의 표현이 억지스럽다고 여겼다. 진짜로 그들은 그것들을 자기의 안으로부터 절절히 느껴 저렇게 곧장 밖으로 던지는 걸까? 늘 이런 의심이 있어 왔다. 내 안에서 느껴지는 게 아름다움이나 슬픔에 대한 감정이기나 한지에 어떻게 견고한 확신을 가져 저렇듯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걸까? 그것도 모든 사람이 몇 개로 한정된, 거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표현을 쓰면서 말이다.



정작 내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어라 이름 붙이기에는 대체로 모호했다. 지금도 얼마간 그러하다. 나는 어쨌든 사람들 간에 받아들여지는 형태로 살기 위해 모호함의 진실은 뒤로 미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과 더불어서가 아니라 나 혼자 외따로이 탐색하리라 뒤로 꼬불쳐 두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의 얼굴은 내가 뒤로 던져둔 미지의 영역을 드러내고 있다. 그와 나는, 모호한 곳에 주소를 지닌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전제, 모든 사물과 현상들에 이름이 붙여지기 전인 제로zero의 영역을 직감적으로 서로 엿보았기에 그토록 이상하게 그리웠으리라.










우리가 아직 로돌프 난롯가에 있을 때였다.

“지난번 빨강 바지 강렬했어요. 그런데 정말 원래 그렇게 살이 안 찌나요?”

“요새 식욕이 없어요. 신경정신과 약을 먹고부터요.”

“신경과 약이라면, 바륨인가?”



식욕의 사라짐은 약 때문이기도 했는데 이와 동시에 모종의 열기가 날 말려가고 있었다. 오로지, 초콜릿만을 먹고 싶었다. 밀롱가 가기 전 저녁마다 먹는 김밥조차 먹지 않게 되었다. 바 근처의 푸르투아Pourtoi 제과점에서 질감 좋고 조그만 초코케이크를 사 먹었다. 춤을 위한 열량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토, 일을 보내고 나면 훌쩍 몸이 줄어서는, 그와 춤춘 지 한 달 만에 4킬로나 가벼워져 있었다. 디아나는 가끔 아르헨티나 드레스나 슈즈도 팔곤 했는데, 모두가 맘에 들어했으나 몸에 꼭 끼게 작아서 두고들 갔다는, 고급스러운 골지 무늬 검정 드레스가 내 몸에 딱 맞게 되었다. 피팅룸에서 나는, 그와 관계된 모종의 열기가 나의 세포들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가를 홀연히 확인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의 말라감이 단지 약 탓인 것으로 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