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그의 밀롱가 친구 중 하나인 발터가 새로운 카페를 개설했다. 그는 탱고를 일종의 걷기 명상처럼 여기는 유파의 추종자였다. 이, 소위 ‘젠 ZEN' 스타일의 탱고는, 생각을 덜어내고 마음을 비우는 도구로써 춤을 활용했기에, 다른 계파들에서 보이는 화려한 패턴이나 장식 등을 많이 배제한 채, 춤추는 상호 간의 밀착된 프레임을 통한 교감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했다.
그는 이 스타일을 좀 더 확산시키고자 카페를 열어 여기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이 개설자 발터는 나의 그를 파비안 형이라고 불렀다. 이 카페에는 나름 탱고계에서 한 스타일한다 하는 몇몇이 모여들었다. 성서 카발라와 연금술 인도 수행법 등 각종 신비학을 섭렵한 요가 지도자, 국립 발레단의 발레리나, 곧 아르헨티나로 가는 댄서, 순수하고 풋풋한 탱고로 각인된 당대 밀롱가의 총아 등등.
이들은 오프라인인 바에서도 항상 바의 왼쪽 구석 끝자리를 점했다. 거기는 말하자면 아웃사이더의 구역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와인을 따며 그들의 포스와 친목을 뽐냈다. 그들의 아우라에 눌려서,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는 룰처럼, 감히 그 구역에 가 앉지 못했다. 약간은 그들의 외곽에 머물다 그들에게 초대되어 그 자리에 합류하는 어떤 이들의 얼굴에는, 갓 특권을 부여받아 누리는 이의 의기양양함마저 서려 있곤 했다.
소수 정예의 이 카페에서 발터 일파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가했다. 그들은 얼마간 정신적 우월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스테이지 탱고라던가 아기자기한 장식이 감칠맛 나는 살롱 탱고를 흉보기도 했다.
이쯤 나는 지난번 설 명절에 대전을 방문했던 발터와의 우연한 친분에 의해 문제의 카페에 자연스레 초대받았다.
나의 ‘그’인 파비안도 이제는, 레슨이 끝나가는 로돌프로부터 이 카페 게시판으로 마음을 이주시킨 듯했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전시 일정 정도가 아니라 칼럼 수준의, 묵직한 심혼을 드러내는 글들을 간헐적으로 쏟아붓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의 글들을 살펴 읽었다. 그가 쓴 ‘일어나 춤추어라’라는 제목의 글은 뮤지컬 ‘파리의 노트르담’ 후기였다. 죽은 에스메랄다를 얼싸안고 절규하는 콰지모도. 연인의 아름다운 비애에 동화된 그의 심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 절절했다. 게다가 유려한 명문이었음에도, 적어도 내 눈에, 그는 콰지모도는 될 수 없었다. 도리어 억제할 수 없는 정념과 종교적 당위 사이에서 갈가리 찢겨나가는 프롤로가 그였다. 콰지모도가 되지 못해 번번이 좌절되는 프롤로.
그런가 하면 그의 또 다른 글, 비장미 흐르는 댄스 예찬론에서 그는, 음악과 춤이 글이나 그림보다 더 영혼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의 ‘론’ 속에선 평소의 그가 늘 은폐하는 열정이 날카롭게 타올라, 나는 절로 빨려 들었다. 그의 글을 몇 개 더 찾아 읽었다. 어느 매체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의 도서로 ‘폭풍의 언덕’을 추천해 놓기도 했다. 히드 클리프,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한 사람, 이라는 표현, 그가 갈구할 사랑이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에스메랄다, 콰지모도, 히드클리프, 삶의 변방을 떠도는 사랑의 성자들. 사랑의 무시무시한 자력으로부터 결코 도망치지 못하고 오히려 불구덩이로 뛰어들어서는 도저히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할 초월적 연인들. 도달하지 못하는 세계를 향한 그림자밟기, 좌절되는 그리움. 맞춰지지 않는 조각들. 이것들을 태우는 춤, 탱고. 이게 그의 은신처인 거다.
혹한을 질러 간 삼 개월여의 레슨이 다 끝나가는 달이었다. 로돌프 스튜디오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프락티카. 디아나가 아이처럼 놀라며 환성을 지른다.
“와아, 이거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사 오신 거예요?”
디아나가 감탄한 것은, 크루아상 같이 세밀한 결들 사이로 치즈가 부드럽게 녹아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의, 케이크 크기의 커다란 파이다. 이 전대미문의 과자 이전과 이후로 나는 그러한 맛을 만난 적 없다.
“그냥요, 지나가다 보이길래 샀어요.”
예의 그, 멀뚱한 말투로 대꾸한다. 그게 어느 동네에서야 지나다 그냥 보일만한 파이인지는 몰라도 내 생애 그 비슷한 것일랑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정확히 디아나가 나고 자란 아르헨티나의 맛이었다. 행복에 겨운 이는 디아나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어느새 모두가 헤어지는 날이 왔다. 마지막 레슨이 끝났다. 그 겨울 내가 참여한 연극의 수많은 조연과 단역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단단히 정이 들어 있었다. 그와 내가 주연이 되고 디아나가 이를 돕는 마법사가 되었던 그 무대, 은반 위의 발레 같던 나날들. 지나갔다.
“여자들은 아무튼...... 또 만날 건데 뭐......”
디아나의 파트너 니콜라가 뇌까렸다. 디아나는 땅게라들과 살갑게 포옹하며 소녀처럼 아쉬워한다.
또 만날 것이었다. 프락티카, 밀롱가, 파티, 탱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러나 그 겨울의 로돌프 스튜디오는 지하 깊은 어드메 선가 서울 번화한 거리 뒤편 한적한 주택가로 통째로 솟아나 잠시 머물던 세팅이었다가 다시 지하로 들어가 숨겨지거나, 스튜디오의 영혼째로 우주 먼 곳으로 날아가는 캡슐이 될 것이다. 저 난로, 지하의 불, 땅속의 태양은.
분명히, 그간 그의 수줍음은 점차 누그러졌다. 그는 자주 미소 지었고, 상대의 불편에 과민하게 사과하는 일도 줄었다. 걸음은 단호해졌고, 더러 자기만의 새로운 스텝의 조합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그 안의 소년은 진화하고 있었다. 나의 유년기라는 실낙원을 거쳐 간 이후, 안전한 용광로에서 서로의 형체를 녹여 다시 태어나는 주물들처럼, 우리는 겨울의 한기를 서로 녹여가며 달래주는 것 이상으로 섞여 들고 있었다. 로돌프는 화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