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아리아

by 래연




지젤, 발터와 헤어져 그의 차를 탔다. 그 또래 남성이 흔히 가질 법한 중형차였다. 승용차만큼은 그의 탐미 취향의 대상이 아닐 것이었다. 그는 조수석의 물건을 치우더니, 내가 앉자 곧, 뒷자리의 초콜릿을 내게 건넸다. 미식가의 초콜릿은 이런 것인가 싶은 그것은 맛이라기보다는 눈부심이었다. 입안에서 녹는 눈의 결정이었다. 비교 불가했고, 어떤 기억의 잔영조차 드리우지 않는, 그림자 없는 유령 같은 맛이었다.


한편 내 근심이 진한 초콜릿 맨 밑바닥에 깔려갔다. 탱고 바에서 나의 숙소 찜질방까지는 겨우 지하철 두 정거장밖에 되지 않을 지나치게 짧은 거리였다. 밤이라는 무한을 앞두고 겨우 두 정거장이라니! 말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 거리를 늘릴 것인가. 이 물리를 극복할 방편으로써 상상력 없는 내가 짜낼 것이라곤 대화뿐이었다. 마침 그가 입을 열었다.



“탱고, 고양이, 그리고 관심사가 또 뭐죠?”

“미술치료를 공부하는 중이에요.”

“아, 그래요?”

“주혜경 선생님한테서 배우고 있어요. 한국의 달리라 불리는 주시옥 화백의 따님이요.”

“참, 우연이란 없어.”

그가 앞이마를 치는 듯했다.

“아, 그 주시옥 화백을 찾아뵌 적이 있지요. 자기 딸이 미술치료를 한다더니...... 내가 미술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기 치료적인 면이 있는 데다 또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니 더 관심이 가더군요. 왜 지난번 전시회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작품이 뭔 줄 아세요? 가르친 제자 중 한 분이 옷의 안감을 뜯어 그걸 그대로 옷 아래로 늘어뜨린 거, 보셨어요? 그 어느 작품보다도 좋았어요.”




보지 못했을 리가! 나도 그 작품 앞에 걸음을 멈추었었다. 곧 우리 사이에는 작은 화로가 놓여있다. 어쩐지 이런 대화로 그를 잡아두는 것, 즐길 만하다. 나는 더 나아갔다. “오늘 워크샵한 작품이에요, 보시겠어요?”

내가 꺼낸 두 개의 꾸러미. 그중 하나는 쾨르 드 리옹이라는 치즈 브랜드의 조각 치즈 케이스를 이용한 것이었다. 상자 외곽에 그려진 하트 모양 주변을 오려낸 다음, 곽을 열면, 다 쓴 서랍용 하마로이드 방충제의 ‘바꿔주세요.’라는 흰 글씨가 드러나 보이도록 배치한 것이다. 유통기한 지난 심장을 다른 것으로 바꿔주라는 모종의 메시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은 빈 병 위에 불길한 화염을 연상케 하는 검정과 인디 핑크 주홍으로 칠한 작품이었다. 그는 말했다. “흥미롭군요.”




우회전만 하면 이내 벌써 찜질방이다. 찜질방 가까이 차를 댄 그는 빨강 검정 연보라가 섞여 이글거리는 병을 들고 유심히 들여다본다. “무슨 의미인 거죠?”

모든 의미들을 그에게 설명하자면 이 드라이브는 너무 짧았다.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이 찜질방에서 자고 싶지 않네요.”

“우리 동네에도 넓고 쓸만한 데가 있는데, 그리로 갈래요?”







찜질방에서 다른 찜질방으로 향하는 사이, 은하에 새겨진 촉촉한 별들이 지상에 도로 빛을 돌려주고 있었다. 이야기는 또 다른 찜질방으로 가는 동안도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찜질방에 가까워가자 나는, 아무래도 자던 데서 자고 싶다고 번복했다. 다시 원래 숙소인 솔트 나인으로. 그러나 거기도 머무르지 않고 우리는 다시 떠났다, 그의 동네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시디를 틀었다. 아리아풍의 노래가 우리 앞에 모세의 파도 같은 길을 갈라 내주었다.

“노래가 청명하지 않나요? 난 그 어느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아요.”

도심에서 멀지는 않지만 살짝 후미진 어느 부촌. 경사진 언덕에 문명의 바위처럼 박힌 거대한 찜질방 앞. 아직도 숙소에 들기엔 일렀다. 입구에 차를 세웠다. 서울에도 어떤 동네들에는 정적이 구석구석 깃들어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멎었다. 그는 미소를 띠는듯하더니 돌연 내 왼쪽 뺨에 입을 맞췄다. 무슨 작은 답례처럼. 그리고 대뜸 물었다. “나랑 뭘 제일 하고 싶어요?”

도저히 솔직해질 수가 없다. 얼버무린다. “드라이브나 좀 더 했으면요.”

실은 정답일 것이었다. 별에서 별로, 행성에서 은하로, 또 다른 태양계로, 멈추지 않고 무한히 가능한 여행이 있다면 말이다.



“음, 그런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언제, KTX 타고 멀리 여행하면 좋겠어요. 끝없이 수다를 떨면서.”

그렇구나. 지상의 은하철도일 수도. 케이 티 엑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어, 난 탈출하는 영화가 좋아요.”

근래 내가 본 영화가 바로 탈출 영화였다. 감옥에 세월을 처박기에는 도무지 아깝게 생긴 탈옥수. 게다가 그는 감옥에 주기적으로 시 쓰기 지도를 하러 오는 시인 치료사 덕분에, 감옥 속에서도 늘 이루어지지 않을 어떤 환영을 품고 산다. 감옥이 재즈바로 바뀌어 자신이 시 낭송을 하고 있는. 이런 분위기에 취해 영화를 보다 보면 그의 범죄는 무슨 곡절이라도 깃든 잘못된 판결이었을 거라 여겨진다.

그러다 그는 탈주하여서는, 폭풍우 속에 잠시 길 잃은 첼리스트와 내일 없는 사랑에 빠진다. 그의 자유도 사랑도 겨우 하루 나절과 하룻밤에 결박된 것일 뿐. 그런 그의 심정들이 간간이 시와 함께 흐른다. 이 영화 때문에 미술치료에서 시 치료로 갈아탈까도 생각했었다.



“치료를 공부한다니 좀 털어놓을게요. 난 이혼을 했어요. 와이프가 피아니스트와 바람이 났거든요. 그런데 그때 젖먹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은 집에 계속 살아요. 이게 스트레스죠. 어떤 사람들은 탱고 추는 사람들끼리는 사귀지 않고 순수한 동지로 남는다고 하지만, 나는 달라요. 밀롱가에서 춤추는 땅게라들과 사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사귀게 되면 이게 또 문제예요. 둘이 같이 추지 않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감시하는 거죠. 상대가 누구랑 어떤 표정으로 추는지, 질투에 차서는. 나의 여자를 다른 남자가 어떻게 리드하는지 낱낱이 보며. 내가 싫어하는 남자 리스트도 있어요. 본인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러다 헤어지고 또 다른 여자와 같은 일이 반복돼요. 집에서 탈출해 밀롱가를 배회하지만, 그렇죠. 친구들은 탱고바 여길 지하 세계라고들 하죠. 아직도 지하 세계에 머무느냐고. 그리고 또 악순환인 것은, 여자와 자기 전까지는 좋은데, 일단 자고 나잖아요, 그럼 결국 헤어지게 되는 거예요.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게 마치 여자를 폭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썩 좋지가 않은 거예요.”


그가 이런 불행한 얼굴을 보일수록 자꾸 도와주고 싶게 되는 것이야말로 그의 전략인가?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교묘한 악마죠. 나한테 호감 갖게 끌어들이고는 책임지지 않으니까. 내 기분대로예요. 한 보름간 문자 하나 보내지 않다가 어느 날은 문자 삼십 개, 이런 식이죠.”

정말, 정말 그의 진정한 뮤즈가 나타난다면 그런 일은 종식되지 않을까? 모든 여자가 이런 미흡한 기대에 휘둘려 그에게 현혹된 걸까? 어쨌든 그와 부싯돌을 튕겨내기엔 더없이 좋을지도 모를 저녁이었다. 모든 고해성사 끝엔 어떤 죄 사함과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