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묘한 타이밍에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어디야?”
“응, 찜질방 앞.”
“아직 안 들어갔어?”
“응, 파비안 님이랑 있어. 얘기 중. 만나기로 했다고 지난번에 얘기했지?”
“그랬던가?”
“응.”
“알았어. 그럼 얘기 잘 하구. 잘 자.”
다시 은하에서 지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있는 곳이란, 시내 가까이 살짝 후미진 부촌의 찜질방 앞 승용차의 한기 감도는 실내일 뿐. 더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다. 탈주는 좌절되었다. 체포될 만한 행각은 없었으나 저 스스로 사살된 마음을 시트 깊숙이 앉힌다.
마음에는 저울의 방이 있다. 기운 것들의 평형을 짓는 공간. 타인들에게 마음을 내주려면 이 측량기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 타인에게 마음 내주는 일에 남자 친구는 한결 자유롭다. 반면 나는 그에게 자발적으로 구속된 이래 타인에 대한 정을 억제해왔다. 스스로 설정한 이상한 윤리에 굴복해온 셈인데, 이런 자신이 문득 불온하게 여겨져 그 재갈을 풀어버리려는 참이었다. 모종의 균형을 찾으려는 안간힘이다. 이러려는 찰나에, 눈앞의 매력적인 괴물과의 시간이 진부한 빛깔로 시들어버렸다.
“누군가요?”
“남자 친구요.”
전혀 짐작지도, 짐작하기도 싫었다는 듯한 얼굴로 그는 멈춰 있다. 그가 내게 묻지 않았으니 속인 적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해 보나 마나다.
“꼭 그래요. 가끔 천사 같은 아가씨가 나타나 좋아지게 되면 말이죠. 징크스처럼, 이전에 사이가 벌어졌던 남친과 다시 가까워지며 나를 떠나게 돼요. 이런 일이 거듭돼왔어요.”
서로의 기대를 확인할 시간마저 우리에겐 희박했었으니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모두를 속인 느낌일랑은 쉬 벗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번번이 이런 상황을 겪어 쉬 적응하고 또 적응하고 빠른 체념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행한 일일까? 왜 우리는 제대로 한 번이라도 상처의 형틀, 그 불타는 둥근 구멍을 갈기 흩날리는 사자처럼 용맹하게 맞서 뛰어 통과하지 못하고 어린 변명만을 일삼는 것인가? 공감과 쾌감을 우주 끝까지 쏘아 올리기는커녕 기계 결함이나 탓한다. 어리석음은 그 자체가 변명이다. 교감을 우주 끝까지 보내는 데는 기체나 거리 중력의 계산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파괴될 각오 하나면 충분하거늘. 이렇게 해서 죄목은 추가되고 형량은 늘어만 간다. 유한한 생, 감내의 고통 아니면 용서받을 구실조차 없을 테니. 그런데 간혹 영웅 같은 탈주자들이란!
또 아까의 그 청명한 음악이 몇 개의 은하계를 거쳐 돌아온 듯 처연히 반복된다. 아리아의 끝,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끝난다.
“이제 자야죠? 아무튼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는 건너편 언덕 위의 집으로 갔다. 고요한 산을 뒤로한 그의 일상의 전쟁터로.
절벽처럼 막아선 찜질방. 안은 휑했다. 탕은 청소 전이다. 대강 씻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쭈그려 잘 데를 찾아 깃든다. 문자가 오간다. “황홀했어요.” “황홀한 밤이었어요.” 우리의 밤 인사였다. 쑥을 매달아 둔 방에 누웠으나 가슴의 역류는 멎지 않는다. 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이러한 밤은.
이후 그를 보지 못하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동네로 이사 가는 꿈을 꾸었다. 붉고 큰 벽돌집이 언덕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