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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Sep 06. 2020

안토니오의  해먹





                                                                                                                                                                                                                                                                                                                                              

안토니오 방 앞의 벽. 

시계 밑의 필름은 그의 커리어를 증명하는 기다란 혀처럼 쑥 빠져나와, bonito 한 것에 대한 그의 모종의 신념을 피력하는 듯 보인다.


어젯밤엔 Carioca da gema(리우 사람들 중 노른자 즉'리우 토박이'라는 뜻의 유서 깊은 클럽)에서 사람들과 마시고 춤추고를 하고 오는 바람에 우리들의  오늘 아침 시작은 평소보다 두 시간은 늦어졌다. 늦은 시작이 될라치면 나는 곧장, 삶을  덜 살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시간의 살점을 뜯기고 뼈다귀를 핥는 개의 황망한 심정으로 주저앉곤 하지만, 물론 안토니오라면 이런 시간성에 관한 한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이다.



안토니오의 고양이들의 편안한 자태에선 주인의 성품이 이 고양이들의 털 결과 눈빛에 어떻게 스며들었나 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의 없는 듯 있는 존재 양식은 숙박객들에게도 적지 아니 전달되곤 하는데, 그의 지붕 아래 머무는 동안에 나 역시도 그의 고양이들처럼 평온에 길들고 싶다.



누나가 재벌 2세라는 소문이 있어, 누나는 앞발을 깔짝깔짝 할짝이는 한 마리 고양이 같아서 보면 같이 놀고 싶어 지거든요, 예전에 라틴동호회를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들은 소리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들은 저런 이야기와는 달리 실제의 나는, 앞발을 핥는 와중에도 내면의 털들과 발톱들은 온통 곤두서 있는 데다, 세상에서 가장 스피디한 종족처럼 불같은 맥박수를 지녔으니, 리우의 노른자인 안토니오가 기왕이면 이 성마른 '나'라는 고양이도 좀 어떻게 조련해주었으면 좋겠다.




세탁기는 그가 있는 위층 본채가 아니라 내가 머무는 아래층에 위치한다. 어제는 실외기 수리가 이루어졌다. 그 일로 안토니오가 아래층에 오후 내내 머무는 동안,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너는가 하면, 이전에 널어두고 방치된 빨래조차 걷는 것이 아닌가. 그가 첩첩이 접어 갠 마른 세탁물들을 들고 위층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계단에 휘릭 비추였을 때 그 모습은 일종의 비현실적 환영으로 보였다. 어쩌면 이 환영은, 평소의 느긋하기 짝이 없는 그의 또 하나의 그림자로서, 어쨌든 이 집이 돌아가게는 만들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성마른 살림꾼 역할을 도맡기 위해 가끔 튀어나와서는, 쌓인 일을 몰아서 처리한 다음엔 다시, 해먹 위에 놓인 안토니오의 긴 실루엣 아래로 기어들어 합체해서 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문장이 길어졌는데 요약하면, 모든 일을 방치하곤 하는 더없이 느슨한 안토니오가 불현듯 흘려 보인 그림자는, 실외기 수리와 빨래 처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신속한 멀티 살림꾼이라는 이야기.




어제 물어 알게 된 고양이들의 이름은 노란 남자애가 오팔라, 젖소 무늬 여자애는 알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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