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의 고양이
이 집은 지어진지 백 년. 중간에 한번 개축되었다고 한다.
이 오후에 꼼짝 않고 여기 지어진 기억 속에 화석처럼 박혀 있다. 자취들의 담장 그늘에 잠겨 눕는다.
밖은 이미 카니발이다. 이미 다들 일체의 몽환의 단추를 풀어놓았다. 모두의 무대인 판타지아 속엔 죽음도 끼어들어와 같이 걷는다. 카니발이 다가올수록 죽음은 불현듯 걸음을 빨리하고, 걷는 척하다 못견다겠다는 듯 뛴다.
곧 죽음의 추격이 극에 다다를 거고, 아쉽게 잡힐 듯 그를 유혹해 따돌려야 한다. 일전을 치르러 여기에 왔다. 여기엔 반드시 죽음이 출몰하게 되어 있었으니.
이만 나는 오랜 미끼 노릇을 종결하려 한다.
이번엔 한가한 오후이기로 하고 해서 목적 없이 산보를 나갔어요.
엘리자베드 여왕과 각국 대통령들이 다녀간, 19세기부터의 디저트 카페에 갔어요.
이런 느낌의 장소는 파리에서도 못 가봤어요.
여기서 제가 카페 가면 자주 하는, 휴지에 고양이 그리기를 하다가
또 유랑을 나섭니다.
그냥 가려는데 웨이터 아저씨가,
어우, 마감으로 작은 커피라도 한잔 어때? 하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깔루아를 한잔.
잔은 사진보다 훨씬 작고 귀여워요.
고양이가 마실법한.
오랜만의 전신 거울이군요?
또 걷다가 전에 봤던 헌책방에 들렀어요.
가게 깊숙이 들어갔다 돌아 나오는데,
아니 이게 누구여요?
당신은 익숙한 생물체,
고, 고양이 아니십니까?!
어디, 지식을 구하느냐?
깨달음은 어떠하리? 하는 얼굴로.
그리고 현자 고양이의 하품.
아아, 삶은 권태롭구나.
다른 세기를 호흡해보지 않으련?
그대 아직도 활자에서 세상을 읽느냐?
나 고양이 님은 한 개의 먼지에서 우주를..., 후암 졸리는구나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