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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 콜라주

개펄에서 건져 올린

by 래연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고운 백발 내려앉은 노인의 옷깃에서 흘러내린 회상과 열정의 불씨

동네 친구와 친척을 잃은 로또 당첨자의 땀방울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의 옛 신발의 먼지

사랑을 잃고 배신당한 여인이 흘린 봉숭아 손톱

빚보증 서 주었다 숨어 다니는 사람의 옛 우정의 소주잔......


남들이 흘린 것들을 하루 종일 주웠고 그 물건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을 채취했습니다. 그러고서는 그 물건들을 그늘에서 꺼내어, 지는 해의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빛에 다시 한 번 놓일 수 있게 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빛이 모두 사라지자 그녀는 남루한 방에서 손발을 닦은 다음, 주인을 잃은 물건들이 서로 어울려 살 수 있게끔 친구를 만들어줍니다. 산새의 깃털과 곱게 시든 낙엽, 도토리 껍질, 끊어진 기타 줄, 부서진 머리핀에 달린 인형, 누군가 흘린 손수건, 길고양이의 수염......

소녀의 방에서 비로소 그것들은 오랜만에 평화로이 숨을 쉬어볼 수 있었고 가끔 몇몇이 어울려 구슬프고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기라도 하면, 그 노래는 나머지 모두가 따라 부르는 합창이 되기도 했습니다.


소녀는 늙을 사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영문 모르게, 아파 괴로워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하늘나라에 와 있었습니다. 빛나는 열정과 부지런함, 활력과 설레임, 우정이 그녀를 뒤따랐습니다. 그녀가 만든 커다란 그림도 하늘나라의 문턱에 도착했습니다.

그녀가 주워 모은 것들은 빛나는 하늘나라에서도 무척 빛나서 하늘나라의 박물관에 전시되었습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소녀가 내려다보니 이미 지구란 땅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녀가 모아 만든 그림은 사라진 지구의 마지막 유물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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