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중고 책방 5.(마지막 회)

by 래연






그 가을 몇 번은 더 갔는지 모른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멜로디. 이건 뭐예요? 그에게 또 하나의 미지의 음악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이건 원래 음악 재생하던 게 잠시 문제가 있어 그냥 제가 틀어놓은 건데요. 고상지의 새로 나온 앨범이에요.”

“아, 고상지, 라이브는 여러 번 들었는데, 드디어 앨범을 냈군요? 아 좋다, 무척 좋은데요. 대전의 라틴 바에 고상지가 처음 방문했을 때가 퍽 예전인데, 그때 반도네온을 독학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동호회가 잠시 술렁였었어요. 그 반도네온이란 게 독학하기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 들었거든요. 피아노 건반처럼 도 옆에 레가 있는 게 아니라, 도가 경상도면 레는 함경도 이런 식이라고요. 하여간 이후로 탱고 동호회 행사나 파티 때 와서 라이브 여러 번 했었어요. 또 료타 코마츠에게 사사하고 아르헨티나 갔다더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나 흘렀네요.”

“고상지 학교 선배인 P그룹 멤버에게서 들었는데, 고상지가 몸이 아파 휴학을 했는데, 그러다 반도네온을 습득해가면서 점점 몸이 나았다고 해요.”

“마치 무병 같군요. 나도 아픈 다음 무슨 악기 神 하나 짠하고 받고 싶네요.”

“그런 거 엄청 부럽죠.” 청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반도네온으로 이런 느낌의 음악을 만들다니, 그냥 전형적인 탱고 악기라고만 여겼는데 이런 적용은 처음이에요. 반도네온 음색이 실제 들으면 참 따스하긴 하죠.”

“저건 애니메이션 풍으로 만든 거예요.”

“많이 좋으네요!”


반도네온 음색이, 바스러져 가다 비에 축축이 젖어가는 심장을 점화시킬 만큼의 선선한 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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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해가 창백해져, 드러난 사지를 좀 더 여며 싸매야 하는 계절이 오고 있었다. 오고 말았다.

어느 날 또 카페에 가보니 그는 일찍 나가서 자리에 없고, 못 보던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그를 대신하고 있었다. 같은 재료로 만든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그 전과 비슷한 듯 맛이 달랐다.



어느 저녁엔 또 그 혼자였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여기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음에 오셔도, 여기가 있을지. 더는 버틸 수가 없고. 여름엔 지하라 시원한 맛에 사람 좀 있었지만, 이제 겨울이 오면 완전히 인적이 끊길 건데, 그전에 정리될 조짐이에요. 당장에 이 커피 기계는 치워질 거예요. 여기가 원래 처음부터 카페 용도는 아니었어요. 온라인 중고서점의 오프라인 창고 용도였는데 공간 넓은 김에 카페도 겸하자 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 손님도 없고,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어요.”

“.......”

“어쩌면 저 아는 형이랑 여기를 인수해서 출판사를 만들고 아지트로 삼아 좀 좋은 음악도 듣고 그런 공간으로 할까 궁리도 있어요. 아니면 저희 매니저님이 계속하시며 갤러리 공간으로만 이어가던가요.”

“아, 거의 일 년 버텼군요. 아쉽다.”



이제 와 카페가 없어지는 것쯤은 그리 아쉽지 않다. 나는 그에게 저번에 트위터 이야기하다가 그가 혹시 뭐라도 SNS 같은 걸 하지 않냐고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었다. 이 카페의 위태위태함을 전해 들어 알게 된 순간부터는 곧, 이 청년과의 연결을 이어갈 방법이 없나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SNS는 하지 않아요. 그런 걸 할 여력이 안 돼요, 제가.”



최근 여기 매니저가 페북에다가, 서적 담당이라면서 그의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사진만 있을 뿐 태그도 없었고 청년 그 자신은 페북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럼 곧장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나 자신 무슨 핑계로 이 질문을 다음으로 미루었는지, 아마도 직접 전화번호를 물어본다는 게 좀 단도직입적이라 망설여진 게지.



더욱이 이날은 더 일찍 나왔다. 한기가 더 깊어진 계절이었으므로.

“일찍 가시네요. 또 오실 거죠?”

“예, 그러려고요. 한 번은 더 들러야죠.”



한 번은 더 들러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어찌어찌하여,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했다. 완전히 겨울이 되어버리다시피 한 어느 날에야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건물 밖으로 철책이 쳐져, “내부 공사 중”이라 적혀 있었다. 갤러리 용도로 전환된다는 설명과 더불어.

그러나 그 공사는 몇 해가 가도록 완성되지 않았고 철책이 올라가 그 문이 다시 열리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들르지 못한 그 마지막 한 번으로 인해 내 視界에서 영구하다시피 사라졌다. 그리고 딱 한 개의 겨울만을 버텨낸 그 공간과 이 동네 전체에 아주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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