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연 Aug 21. 2021

징검다리 극장, 풀밭 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바느질 같다.

반짝, 하고 바늘이 바깥으로 나왔다가 그다음 순간엔 천 아래로 자맥질한다.

하루가 생기 돋고 활기차면 그다음 날엔 어느 정도 하향 곡선을 탄다.


타로 카드를 매일 뽑지만, 굳이 뽑지 않아도 어느 정도 다음 날의 느낌이 짐작되곤 한다.

다음 날의 기후는 오늘의 밤하늘에 씌어 있으니.



어제는 피곤한 날이었다. 

천변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에 서자 문득, 파란 신호등이 되기를 기다리느니 오른쪽 길로 가보고 싶어졌다. 

오른쪽 길은 달콤할 것이라곤 없이 황량한 거리 구성이라, 잘 걷지 않던 길이다.

하지만 가끔은 맘에 내키지 않는 걸 해 볼 때 의외의 유익도 있을 수 있는 거지, 하며.

쾌적함만을 위하여 쾌적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다가 점점 더 무엇에도 쾌적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온 현대의 삶을 떠올려가며,


이렇게 발걸음을 떼자마자, 길 한쪽에는,  

나무와 검은 트렁크.






 

아주 피곤한 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검은 트렁크가 말해주고 있었을까? 자신이 버려져야 했던 곡절은 바로 검어서였다고?

그리고, 자길 버린 주인을 따라다니며 본 곳들과 그곳에서 담아 왔다가 다시 쏟아버린 물건들에 대해서도,

나무에게 길길이 읊조리고 있었을 거야.



트렁크는 곧 나무 곁을 떠날 테고.

떠나는 게 그의 일이니.

나무는 들은 이야기를 칭칭 나이테에 돌려감으며 노래를 녹음하겠지.

남겨지는 게 그의 몫이니.

그리곤 또 노래를 풀어놓겠지?










천변을 걷다 돌아오는 길은 어둑했다.

이 어스름 속,  저절로 어떤 두 개의 형상에게로 눈이 돌아갔다.



징검다리 언저리의 풀밭 위에 웬 엄마와 어린 아들이 앉아 놀고 있었다.

엄마는 휴대폰으로 조명을 비추어주는 것도 같고,

아이가 노는 모습을 찍어주고 있는 것도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볼 순 없었다.

그들은 몰입 중이어서, 거리를 조금 떼어 지켜봐야 했다.

누가 보고 있음을 의식하면 놀이의 흥이나 집중력이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 순간엔 느꼈다.



아이는 풀밭 위에 작은 동물 인형들을 가득 늘어놓고서

인형들을 전진시키거나 방향을 틀면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도 했다.



이 인형들 아니 동물들은 풀밭 위에서, 정말 약간은 목초지의 동물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엄마가 비쳐주는 조명 아래, 둘만의 극장,

그런 극장은 본 적이 없었다.



더 가까이서 지켜보며 엿듣고 싶었지만,

그저 자꾸만 거기를 돌아보면서,

어린 날의 소꿉놀이를 떠올리며 계속, 걸었다.



어젠 마트에서 산양분유를 한 만 원쯤 깎아 팔길래 사가지고 왔다.

집에 와 유통기한을 살펴보니 그건 잘 눈에 띄지 않는 대신,

태어나서 6개월까지 라는 제법 큰 글씨가 보였다.

'이걸 먹으려면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거야?'

혼잣말을 했다.



분유통엔, 엄마 산양과 아가 산양이 나란히 풀밭 위에 앉아 있었다.







***세계 인형극 축제 속에서 찾은 반딧불 같은 삶의 순간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가 올 가을 당신을 찾아갑니다~~~^^ 함께 해요!!


펀딩진행중

https://tumblbug.com/pinocchi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