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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 받기 위해, 나 아닌 척 할 수는 없다

by 래연





여기에 작은 글을 남기면 좀 휴식이 될까?



일이 되어갈라치면, 그것만 따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불러오는 새로운 변화의 국면들을 계속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부분적으로 택하거나 거부할 수는 있지만, 생은 기본적으로, 자를 수 없다.



뒤돌아, 작년은 얼마나 휴식하였던가!

하지만 그러는 날들에 스며드는 권태는 또 얼마나 순간순간 못 견뎌하였나!



조금 내 생각을 밝히는 날카로운 글을 쓰거나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갈린다.

누군가는 격하게 공감하거나 혹은 공감수가 팍 줄거나.

뭔 글을 올리자마자 이웃이 관계 끊고 그런 일을 당했다던 분들의 일이 떠오른다.

아직 그런 일은 없었지만, 어제 약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바로 어제 인스타와 페북에 좀 그런 마음 솔직한 글을 적었는데, 올리자마자 곧장 텀블벅 후원이 두 명이나 줄었다. 가끔 역행이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두 명은 처음이어서, '까마귀 날자 배'의 느낌이 들었다. 혹, 내 글이 거슬렸나?


그냥 다른 이유로 단순 변심한 걸 수도 있다. 세상에 이유란 천차만별이니. 각각 독립적인 사건들의 인과는 어지간하면 연결짓지 않는 것이 마음의 건강에 이롭다. 그렇게 여기지만, 일단 저런 현상이 나타나면 우선은 그 연결이 한 번은 슬쩍이라도 지어지지 않기도 어렵다.



세상엔, 마음으로 공감하면서도 거부감을 일으키게 되는 견해들이 있다. 이런 현상이 의외로 잦을 것이다.


내가 당장 바꾸기 힘들게 나를 얽매는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누군가 이의 제기를 한다면, 기본적으로 맞다 여기더라도 '그래서 어쩌라고? 그걸 몰라서 못 바꾸는 건가? 알면서도 못 바꾸는 것도 답답한데, 그 말을 해서 무엇 할 건데?'하는 심정이 들 것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는 자체가 쌍방에게 피로한 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기도 어렵다. 무기력에 굴복하여 쓰러지는데 동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인식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최소한 그 언젠가를 위해서인 양 진실을 바라보고 있기라도 할 것인가의 문제 같은 것이다.



구조에 깊이 함몰되어 있을 때는 계속 함몰되어 죽어가길 기다리는 게 더 편하긴 하다.

어떤 상황에서건 움직인다는 것은 에너지가 더 드는 일이다.


나 또한, 살아있지 않다면 굳이 움직이려 들지 않을 거다. 너무 자명한 이야기지만, 하필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 죽어지내면서 죽어가는 걸 더 감당할 수 없을 뿐이다.



아무튼 사랑만 받기 위해, 나 아닌 척을 할 수는 없다.

사랑을 받을 주체인 내가 상실되고 나서 오는 사랑은 다 무슨 소용인가?

죽은 다음의 시체 위로 쌓이는 금화 잎들 같은 것.



***그렇게 해서 아직 빈 좌석이 된, 텀블벅 후원 77번째 행운의 자리, 누가 와 주실까요?

당신을 기다립니다~~

https://tumblbug.com/pinocc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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