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형극 학교로부터 초대를 받다
지난 9월 말의 일이었다.
이 이야기도 이제야 꺼내니,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었던 거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의 텀블벅을 무사히 마치고서는, 이제 한숨 좀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바빠진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책이 나오기 전 뽑은 샘플을 참고하여 표지와 내지에 수정을 가했다. 글자 포인트도 조금 줄이고 여백도 바꾸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달라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야 했다.
게다가 원래 하기로 되어 있던 인쇄소에서는 갑자기 이사를 한다고 그다음 주에나 인쇄 가능하다는 연락.
텀블벅 후원자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인쇄소의 이사를 기다릴 것인지, 퀄리티나 서비스가 입증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인쇄소에서 모험을 할지, 이런 급 선택도 해야 했다.
후원자분들에게는 무엇보다 날짜를 지켜드리고 싶었다. 기다리신 기간도 길 텐데.
그래서 새로운 곳에서의 모험 쪽으로 갔다.
그 외 이런저런 변수들에 열어놓고 적응하면서, 아무튼 최종 파일 검토하기를 몇 번씩,
무사히 인쇄가 되어 일단은 후원자분들에게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는 통 발 뻗고 잘 수 없었다.
새로 오픈한 교보 건대점엔 시 에세이 베스트와 추천 도서 두 군데 전시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게 막내 고양이 모리가 죽고서 100일이 된 날의 일이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는 모리와 관계되어 있었다.
지난 2월 말, 막내가 고양이 편평상피암을 진단받고서, 가망 없는 날들을 함께 하던 참이었다.
이 병은 진행이 빠르다.
턱에 만져지는 종양,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런 노쇠나 기능의 문제라곤 보이지 않던 고양이가
환자로 진단되자마자 병이 악화되어 죽어간다는데,
이 현실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거나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 없이, 간병이란 걸 해야 했다.
턱의 종양은 계속 자라나 곧 침이 줄줄 흐르게 되고 입으로 먹기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최소한 못 먹어 죽지는 않게끔, 목에 구멍을 뚫고 관을 연결하여 그리로 매일같이 먹여야 했다.
습 사료를 다시 찌꺼기 없도록 곱게 갈아 주사기에 나눠 넣어주었다.
그 연결된 관은 잘 고정되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느새 헐거워져 밀려 나오고 있었고,
이게 빠져버리면 반대쪽에 다시 설치를 한다 해도 며칠 간격이 필요한 거라,
이 관을 생명줄로 알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먹일 때마다 엄청 긴장이 되었다.
내 온 몸이 아파지는건 도수치료 가서 풀곤 했다.
그러면서 점점 아이 상태가 나빠져 가는 게 보이고, 이런 나날들의 어느 순간 아이가 떠날지 알 수 없는 끝없는......
잠들기 전이면, 그다음 날 아이를 살아서는 못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되뇌며 눕곤 했다.
고양이를 진정시킨다는 음악을 틀어놔주고,
그러면서 2013년도에 썼던 원고를 꺼냈다.
뭔가 마음 잡고 몰두할 것이 필요하기도 했고, 아이가 가고 나면 아이 대신 내 손에 남겨질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도 같고.
새로 급구했던 인쇄소에서 운명을 맞이한 책.
아닌 게 아니라 이때 마침 3월 초였나? 독립출판 무슨 행사에서 만났던 분이 스스로 출판사를 차리더니 원고 모집을 하고 있었다. 이거를 보고 꽤나 빠른 속력으로 두 개의 원고를 막판 다듬기 했다. 목차와 기획안 등을 다듬어서 보내었고, 결과는.
결과는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왔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가 아닌 다른 또 하나의 원고를 가지고 책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아마 그게 더 트렌드에 비추어 참신해 보였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한 번 더 다듬기와 기획안이 완성된 셈이었다.
이 피노키오 원고는 그동안 책으로 안 만들려고 그냥 들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끼워 넣을 곳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메이저나 에세이 전문 브랜드들에 보내봤지만, 어떤 출판사에서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처럼 읽힌다고 피드백을 주었고, 나머지는 반응이 없었다.
브런치 북 역시 마찬가지. 이 콘테스트에서 뽑히는 책들 중 발견되는 퇴사, 귀농, 그리고 '~~ 하는 법'처럼 인생 사는 법을 가르치는 책들하고 이 책하고는 현격한 거리가 있다.
인형극이라는 소재 자체가 마이너 한 구석들 중에서도 변두리와도 같다. 심지어 브런치에 관계 글을 써서 발행하려 할때마다도, 인형만 뜨고 '인형극'이라는 키워드 자체는 아예 뜨지조차 않았다. 않다가, 불과 2주 전 정도부터 갑자기 뜨는 것이었다.
사실 인형극처럼 오해받고 본모습과는 다르게 알려져 온 예술 장르도 드물다. 일단 새삼 인형극에 관심 가질 사회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결국 극소수 마니아들만을 위한 콘셉트일 테니 누가 책으로 만들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현실적 이유로 그냥 버려버리기에는 이 원고가 영 아까웠다.
대중과 만나는 건 두 번째고 일단 책이라는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막내 고양이도 죽어가는 마당에.
그렇게 해서 플랜 B도 아닌 다른 플랜으로 넘어갔다.
굿즈로 제작한 수제 판화 엽서 중 하나.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중간에 아이는 명을 다했다.
이후 여름을 꼬박, 슬픔을 바쁨으로 바꾸어 지냈다.
슬픔은 조금 더 한가해질 날로 미뤄놓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눈물은 요새 흘리고 있다.
아무튼 갖은 우여곡절 끝에 인쇄가 들어간 그다음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인스타를 살펴보고 자려다가, 문득 한 개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보통 비공계 계정들이 나를 팔로우할 경우, 맞팔을 거의 안 해왔는데,
이 계정은 왠지 모를 힘에 의해 내가 팔로우를 눌렀던 경우였다.
이 하나의 메시지로 인해 이 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샤를르빌 메지에르 <Institut International de la Marionnette> 자료 센터 사서예요.
우리가 래연 씨의 책에 대해 말했는데 아주 재미있을 것 같고, 자료 센터에 이 책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보를 많이 못 잦았어요. 그 책은 어디서 살 수 있어요?
축제에 관심을 보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Juliette Marsaud
그리고 외국 계정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발매 전이니 정보가 찾아질 리가 없지.
저렇게 한글로 메시지가 와 있었고, 나는 답을 우리말과 불어 두 가지로 적었다.
이 사서님 계정에는 부산 감천 마을 사진에 '내 마음의 고향'이라 적혀 있었고,
여러 군데 절이라던가 한국의 여기저기 사진이 많았고,
제목이나 설명을 한국어로 적어 놓기도 했다.
무언가 한국 문화에 이해를 가진 분.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갔다.
사서 님은 내가 프랑스 현지 신문에 나왔던 기사를 궁금해하셔서, 찍어 보내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이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는 발매 전 프랑스 샤를르빌 메지에르의 국립 고등 예술학교인 '세계 인형극 학교'의 요청으로, 발매 직후 프랑스로 보내어지게 되었다.
마리오네트 줄을 표현한 인형극 학교 로고 예쁘다.
며칠 전 책 무사히 받았다고 기별이 왔다.
그래서 이벤트를 한다.
좋은 흐름의 운을 탄 일을 축하하거나 참여하면, 같이 하는 사람들의 운도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게 운의 법칙.
그러니 이 일을 나만의 기쁜 일로 혼자 넘어갈 것이 아니라, 조그만 잔칫상이라도 벌이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이벤트는
실제 떡을 대신하여 아메리카노로.
현대는 각종 문물과 방편의 시대이므로.
온라인 서점 한줄평은 해당 서점 구매와 상관없이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누군가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보고 참고가 되는 용도이기도 하므로, 그냥 '좋았어요'라고 하면 어떻게 좋았는지 감이 안 올 거라, 그래도 30자 정도면 조금은 정보를 실을 수 있지 않나 해서 30자를 설정했다. 그러니까 엄밀한 기준은 아니다.
이 링크 트리를 타고 오면 계정 팔로우와 도서 구매 및 이벤트 참여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