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바깥의 이야기
리뷰를 써주신 건우 님 배경화면 색깔이 항상 맘에 들기 때문에 폰으로 찍어봤다.
이 분은 내 책의 페이지 구성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보라색 페이지들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아름다운 영화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이 블로그의 바탕화면 색에 마음을 뺏기다가 어느새 추억에 잠겼다.
책에 쓰지는 않았는데, 지금에야 생각이 난다.
책 속에 나오는 고3 때의 신비한 친구와는 대입시험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쯤 다시 만난다. 그 겨울에 나는 종로의 리어카에서 웬 모자 하나를 샀는데, 바로 저 색깔 비슷했다. 왜 이렇게 저 색이 친밀했나 했더니 바로 그..... 모자는 완전히 저 색과 같은 것은 아닌데, 정확히는 체리핑크라 불림직한 색이었다. 핑크도 보라도 아닌.
그 베레모가 맘에 들어 줄곧 쓰고 다녔다.
마침 그때 입던 겨울 코트가 역시 보라 핑크 남색의 배합으로 된 옷이어서, 그 베레모랑은 합이 잘 맞았다. 내 바로 위의 오빠는 이 시절의 나를 기억했던지, 언젠가 올케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얘가 어렸을 때 동화책에서 막 빠져나온 듯이 입고 다녔다고.
그 옷과 모자를 쓰고 캠퍼스를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남학생 둘이서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쟤, 불문과야."
웃음을 감추지 않고 언덕을 걸어내려 갔다. 당시 캠퍼스에서 불문화 여학생들은 꽤 인기가 좋았다. 세련된 차림의 여학생이 또각또각 걸어가 멈춰서는 우편함 위치는 불문과라는 말도 있었다. 불문과 여학생에게 드리워진 아우라는 말하자면, 파리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 뇌리에서 영 휘발되지 않고 세기를 건너 건너 지금까지인 것하고 좀 비슷했다. 불문과는 대강 많이 사라졌지만.
내 책 속 회상 신들은 불문과 전성기 시절 배경의 이야기로서, 그때만의 낭만은 헤어릴 수조차 없다. 불문과들이 사라진 만큼 낭만도 어디로 간 것 같다. 심지어 언젠가부터 낭만은 현실감 뒤떨어진 피상적 꿈으로조차 폄하되기도 한다. 겉멋과 치기와의 동의어처럼. 그런데 겉멋이나 치기가 그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는 따로 고려되지 않은 채 그렇게들 말하는 것이다. "겉멋이고 치기일 뿐이야!" 이런 어법 속에 겉멋이나 치기는 절로 한심하고 변변찮은 것으로 낙하한다.
책 속에서 보라색 페이지로 설정된 과거 회상신들에 대해선 약간의 바람이 있었다. 4,50대 이상 분들은 그 부분을 읽으며 '아, 그런 시절이 있었지. 정말로 낭만의 시대였는데!' 하는 달콤한 회상을 다시 불러들이게 하고 싶었고, 그 시대와 조금도 닿은 적이 없는 그 아래 세대들에게는, 그 시절만의 젊음의 우수와 낭만의 조각들과 그 형언할 수 없는 공기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추억이나 낭만 자체를 재조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낭만이란 "그때는 좋았지!"식으로,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 속 스테레오 타입처럼 박제되어 단순 미화라는 틀 안에 갇힌 허상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얼마나 본질적 아름다움인지를 한 조각 한 모금씩 음미하게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다시 만나는 삶의 부분 부분들이란, 검정색 크레파스를 긁어내면 드러나는 색색의 아련함처럼, 삶에 대해 덧칠된 갖은 흉측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긁어내면 나오는 기이한 화석의 빛깔이다.
그런가 하면, 잠깐 연극반을 할 때 가끔 대화를 나누던 선배 하나가 있었다. 그는 연극반에 푹 들어와 있지는 않고 걸쳐 있었다. 연극반 누군가와 친한 사이 식으로. 그는 종교학과답게 어딘가 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용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무용 공연에 나를 두 차례 데려갔는데, 무용을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아, 기억이 기억을 부르는구나!
하나는 호암아트홀에서의 공연이었고, 또 하나는 연작으로, '봄의 제전'과 랭보의 시 '흠 없는 넋이 어디 있으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다. 여기서 무용과 어우러진 스트라빈스키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두고두고 들었다. 클래식을 통 안 듣던 내가 클래식을 듣게 된 게 '봄의 제전'이었는데, 이는 클래식 중에서 클래식한 편은 아니다.
암튼 그 선배가 내게 '유리로 된 사람 같아서 깨어질까 함부로 대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 모자에도 찬탄했다. 영혼의 세계의 빛깔이 이런 것이라고 했다.
원래의 그 모자는 낡아져 처분되었고, 이 모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몽 생 미셸에 갔을 때 엇비슷한 것을 하나 사기는 했지만, 원래 것의 양감과 느낌과는 차이가 난다. 하지만 사라진 걸 불러올 순 없으므로 조만간 이 모자라도 써야겠다.
오늘은 조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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