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곁으로 돌아온다고

by 래연




네 마리 고양이의 집

지난 2월 초 증상이 발견되자마자 곧장 조직검사를 했다. 떼어낸 덩어리는 외국으로 보내어져 감식이 의뢰되었다. 그런데 이 겨울 미국에 들이닥친 이상 폭설로 인하여 결과의 도착이 늦어졌다. 그동안 나에게는, 아직은 결과가 드러나지 않은 유예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여러모로 다행스러운 징후라곤 없어 보이는 거의 확인 차원의 검사에 가까웠으나 어쨌든 결과가 나와봐야 그 이후의 투병 과정이 구체화 될 것이므로, 그러기 전의 날들이란, 아직은 함께 해오던 일상의 즐거움이 남아있는 마지막 연옥이 되는 셈이었다. 진행되는 병을 껴안은 채로도 이전의 모드를 이어나가는,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자는 불안한 평화의 날들.


이날들에도 몇 번은 눈이 내리고 또 녹아갔다.



지난 토요일에 이르러, 유예적인 날들은 이윽고 끝이 났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보안 검색을 통과한 후 드디어 가벼워진 몸으로 면세물품 같은 거나 쇼핑하거나 혹은 가벼운 요기 따위로 소일하며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인간의 비행기 여행같은, 고양이에게도 이 비슷한 날들이 왔다. 대신 인간처럼 짐을 가지지 않은 동물은 짐 대신에 자기 몸무게를 덜어낸다. 킬로 수가 부쩍 줄어들어 가벼워진 몸의 내 고양이는, 지은 죄도 몰래 숨긴 일말의 트릭도 없는 채로 무방비하게 심판대에 올라야 했다.


고양이에게 흔한 구강암의 종류라 들었다. 드러난 후 병의 진행이 빠르다고 한다. 구강과 턱 쪽으로 나타나는 종양이어서 나중에는 입으로 먹기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관의 삽입에 대해 설명받았다. 상황이 악화된 이후에 닥쳐서 하면 더 난감하다고 했다. 관의 시술이라는 것이 생소했지만, 앞뒤를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곧장 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안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관 시술 후 적응 경과를 보기로 해서, 모리를 하루 맡겼다 찾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잠시 모리가 없는 공간 속에서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있자니, 지금 닥친 상황에 빠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아까 병원에서는 마구 누락시키고 눌러두었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견딜 수 없이 눈물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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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타워의 이 정도 높이에도 나중엔 올라가기 버거워진다. 이때는 병이 막 드러난 초창기.





맏이 때와는 다르다.

맏이가 쇠약하여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심박수 등 생의 지표가 되는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서 수액 처치조차 맘 놓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만한 검사나 처치를 시도해보며 경과를 보기 위해 일단은 입원을 시켰다. 그러다 점점 상황이 악화되는게 더욱 분명해지자 다음날 의사 선생님이 다시 전화를 주셨다. 많이 안 좋다면서.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지금 할만한 선택지 몇 개를 제시하셨는데, 여러모로 이제는 치료나 검사를 더는 시도할 상황은 아니어 보였다.


입원실의 맏이는, 병원에서 깔아준 요 위에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으르렁거리거나 하악할 힘도 없이. 아이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났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싶었다! 큰 아이를 보내는 과정 전체에서는 이 순간이 제일 슬펐고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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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실의 제롬




“그동안 우리 고양이로 살아줘서 고마워.”

고마워, 소리만이 마음으로부터 하염없이 솟아났다.

나의 20년에 걸친 고양이 시대를 연 첫 고양이와의 이별은 즉, 고양이 시대의 커튼이 닫히는 신호가 되는 셈이었다.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이후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아이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같이 살던 지난날들이 빗발쳤다. 주변 세상이 온통 침묵에 잠겨든 듯, 내 공간 속에서는 고양이 하고만의 시간이 흘러갔다.


데려다 놓고서 숨이라도 돌릴 겸 늦은 오후 산책을 나섰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지 몇 개월이 흐른 초여름의 어느 날, 아직은 더위가 덮쳐들지 않은 상쾌한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앞뒤로 오가고 있었다.

마악 물들려는 구름처럼 뭉개뭉개해진 마음으로 발을 옮겨가던 중이었다. 불현듯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되었다.

스르르 휘리릭. 한 마리 가느다란 뱀이 천변으로부터 기어 나오더니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가로질러 내 집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물뱀이네요.”

근처에 있던 누가 말했고,

‘이젠 정말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뱀을 보자마자 곧장, 어린 왕자가 자기 별로 돌아가느라 힘을 빌렸던 그 뱀이 떠오르면서.

늘 걷던 그 길에서 뱀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도 역시 산책을 나섰다. 평생 아파본 적이라곤 없던 모리는 생전 처음 병원에서 이틀을 지낸 긴장이 갑자기 녹아서 그런지 캣 타워에 올라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캣 타워의 맨 위 뚝배기 자리는 그저께 떼어냈다. 바꿔준 지 얼마 되지 않는 이번 캣 타워는 지난번 것보다 높고 맨 윗자리가 안정적이지 않아서 환자가 된 모리에게는 위험해 보였다. 이제 모리는 캣 타워의 보다 낮은 자리 혹은 나의 가죽 의자 위 방석에서 지내거나 한다.


그 날의 산책은 어떠했던가?

우선은 보호자의 위치에서, 이 얼마나 갈지 모를 투병 기간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숨을 좀 골라야 했다.

그 산책의 초입이었다. 집을 나서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첫 번째 공간이 나온다. 현관 앞 바닥과 벽에 비치는 마당의 단풍나무 그림자, 그 너머로는 화단이 있다. 볕 좋은 날이면 단골 고양이 한 두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잠자고 있는, 세상 안온한.


바로 이 화단에 이날은 무려 네 마리가 모여 있었다. 큰 고등어, 작은 고등어, 삼색이, 노란 고양이.

내게도 원래는 네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큰 고등어, 작은 고등어, 삼색이, 갈색의 샴.

그중 작은 고등어와 큰 고등어는 떠나갔다. 남은 두 마리와 함께 하는 날들은 줄어간다.

그러니까 아까 누워 있던 저 ‘눈물의 소파’ 위에서의 나의 울음은 모리에게 닥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가리키는 다른 의미, 즉 20년간 고양이와 함께해 온 삶으로부터 이제는 곧 고양이들이 모두 비워진 적막 공간으로의 이행이 일어나려는 데 대한 떨림이었다. 이제 곧, 살아 있으면서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눈물의 소파를 가까스로 벗어난 직후에 본, 현관 앞 화단의 네 마리 고양이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 세상 어디에라도 우리가 있어요, 있을게요, 당신의 네 마리 고양이가요, 라고. 사라지는 듯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 곁으로 돌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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