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8.
어느 겨울엔 산비탈 아래 비스듬히 내려가는 길옆을 지나다 새로 생긴 미술 교습소를 발견했다. 이끌리듯 처음 들어가, 딱따구리 아트 스튜디오, 한동안 여기에 다녔다.
남미거나 동남아거나 티벳이거나 북유럽 동유럽 혹은 어딘가의 인디언처럼, 동화책 속 어느 모르는 나라말을 하는 소녀처럼 땋은 머리를 한 선생님이 그곳에 있었다.
이국의 말은 선생님의 그림으로 날아들어 그림이 되었다. 거기서는 빈번히 토끼들이 뛰놀곤 했다. 선생님은 집에 두고 온 토끼들을 자주 도화지 위에 풀어놓았다. 뜯어먹을 풀들은 언제고 모자라는 법이 없었다.
미술의 기초처럼 간주되는 데생은 이 교습소에선 얼마든지 생략되었다. 보고 싶은 것을 담아다가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릴 수 있는 곳이었다. 고양이들과 같이 사는 나는 고양이를 그릴 작정이었다. 사진들을 출력해서 가지고 갔다.
“어머나 샴이네요.”
“얘 이름은 모리예요. 처음 데리러 갈 때, 가는 차 안에서 그냥 모리란 이름이 떠올랐어요.”
“모리라니, 어울려요. 얼굴이 더도 덜도 아니게 딱 모리인걸요. 모리라고 써 있어요.”
“처음에는 포인트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자라면서 점점 포인트가 진해지더니 지금 얼굴이 됐어요.”
“모리 얼굴을 보세요. 샴 얼굴은 요렇게 딱 벚꽃잎처럼 생겼어요.”
“어머나, 그러게요.”
이후로 모리 얼굴을 볼 때면 여지없이 벚꽃잎이 보였다. 탄복이 나올 만큼 비슷한 윤곽이었다.
벚꽃 나무들이 가득한 나의 동네를 거닐다 계단에 점점이 떨어진 꽃잎들을 보면 모리 얼굴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모리가 새삼 그리워지곤 했다. 계단을 올라 길을 건너 직진을 하면 곧장 집이 나오는데도, 집 안에 모리가 있을 터임에도.
이후로 몇 년이고 벚꽃잎들이 매일 떨어져 갔다. 그때엔 결코 보이지 않았던, 방 안 가득한 벚꽃잎들이 이제야 보일 즈음, 지금이 그럴 즈음이다.
3. 1.
누구를 간호해 본 적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먼저 간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병명을 파악할 겨를조차 없이 떠났다. 고양이들이 워낙 아픈 내색을 안 내기도 해서, 아픈 게 드러나자마자 그다음 날로 세상을 떠나버렸기에, 슬픔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조차 속성이었다.
그래서 같이 누린 행복의 대가를 너무 헐값으로 쳐 넘긴 기분마저 들었다.
누군가가 고양이들의 성격이 각자 판이하게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신기해한다면, 그런 태도가 오히려 신기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 사이에 각자의 개성과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신기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각자가 개별적인 인격임을 주장하면서, 고양이는 고양이라는 종의 특성이라는 전체성으로만 묶으려 든다면 그것은 인간 중심의 협소한 시선이다.
그러나 고양이랑 살아본 적이 없어 먼 거리에서만 지냈다면, 그에게 고양이란 하나의 종種의 추상화에 그칠 것이라, 그런 기분이 든대도 아주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논리가 아니라 감수성의 차원에서는.
그러나 내 삶에서 고양이는 종의 추상화에만 그치지 않고 뚜렷이 개별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몇 마리와는 가깝게 지내었으므로.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운명이 제각각이듯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라, 떠나는 길의 지도들이 조금 씩 다르다.
어제는 모리의 병명과 그 진행, 돌보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오늘부터는 배워온 방식대로 사료와 약을 먹이고 있다. 가루약은 하루 두 번, 항암제는 이틀에 한 번.
따듯하게 밥 먹일 존재가 있고 마지막까지 뭔가는 계속 보살펴 줄 수 있다는 것, 살아서의 행복이다.
다만 이런 상황은 사전에 마음의 준비가 있었다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것이라, 생각은 많아지고 감정은 용암처럼 솟아오른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을 진정시킬 소일거리들을 마련해 놓았다. 하루 한 장 상상력 그리기 책과, 숨은그림 찾기 책을 주문해서 이제 막 도착했다.
삶의 끝을 맞이해가게 된 고양이 옆을 지키면서 인간들의 생애를 생각한다.
그 누구와도 통하지 못했고, 어떤 값이 매겨져 돌려받지 못한 恨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비통해한다.
이 값에 관한 한 그것을 두고 상정하는 화폐나 도량형이 서로 달라 그 누구와도 통하지 못했을, 유통되지 못한 각각의 화폐들의 속국인 각자는, 모여 배를 이루지 못한 개개의 널빤지가 되어 떠내려간다. 앞다투어 죽음에 쫓기듯 그리도 바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