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경 속 숨은 그림, 고양이들
우리
3. 3.
슬픔은 수시로 올라온다.
쉬려고 소파에 누워 있노라면 상념에 잠겨가다 눈물샘이 폭발하곤 했다. 지난 사흘간의 일이다.
그래서 그 소파를 '눈물의 소파'라 부르면서 거기 눕지 않기로 했지만, 다른 바닥에 누워봐도 여전했다. 피해 갈 수 없는 눈물의 길.
그러나 슬픔의 길을 마다하지 않은 채로 씩씩해지기로 했다.
받은 은혜를 갚듯이, 설령 어설픈 보살핌이 될지언정 내가 가질 수 있는 밀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그것을 하고자 한다.
아직은 서로 온기를 나누고 있는 나날들에, 모리는 고양이로서 내게 줄 수 있는 남은 교훈들을 내게 수혈해주려고 침묵 속에 꿈틀대고 있다. 내가 사료를 갈아 체에 걸러 주사기로 옮기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시 렌지에 데워서 또 주사기로 옮기고, 약을 개어 작은 주사기에 넣고, 소독제를 챙기는 동안에도.
커져버린 종양을 턱에 달고도 아직은 입으로 사료를 먹을 수는 있는 시간이지만,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주기 위해선 별도로 목에 뚫린 구멍에 꽂은 관을 통해 액상 상태로 만든 사료를 공급한다. 카테타를 삽입한다는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런 과정이 고양이를 더 힘들게 하지나 않을까 더럭 겁이 났지만, 이것이야말로 먹기 힘들게 된 환자들에게 먹을 걸 공급하는 쉽고도 보편적인 방법임을 알게 되었고 모리도 잘 적응하고 있다.
오늘부터는 공급 횟수를 늘려 먹인다.
그래도 잠을 자고 나면 평소와 같이 울면서 사료를 조른다. 그 소리가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입으로 먹을 수 있게 캔 사료를 조금 덜어준다.
며칠 전 주문한 숨은 그림 찾기 책은 내게 큰 쓸모가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많다면 더 주문하고 싶다.
종이접기나 종이 오리기 책도 주문할까 망설였지만, 역시 안 사길 잘 했다. 머리와 손이 엉성해서 책만으로는 복잡한 조작 과정을 이해 못 한다. 공간 기능이 떨어져서 종이학 이상은 접지 못한다. 내겐 보다 직감적이고 원시적인 게 걸맞다. 나는 겨우 호모 사피엔스다.
종이접기나 종이 오리기는 강좌 같은 게 있다면 가서 배우고 싶다. 성인 대상으로 그런 걸 가르쳐주는 데가 혹시 있으려나?
사람이든 고양이든 제 입에 닿는 것이라면 모조리 핥아주는 로리는 타고난 힐러와도 같다.
그녀가 평소처럼 자주 모리를 핥아준다.
요새는 시리즈<종이의 집>에 나오는 교수에게 중독되었다. 주도면밀하고도 몹시 감성적이며 인간적인 그의 심상이 지금의 헐렁한 나의 자아상을 대신하듯, 수시로 그의 목소리가 내 빈 마음속 공간에 울린다. 이런 날들에 얼마나 위로인지 모른다.
바로 이 시리즈물을 내게 알려준 도수치료사와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난다. 햇빛이 부드러운 그 공간의 창가에 언제나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바로 누워보실까요? 엎드려 보세요. 이런 말들의 사이사이로 서로 나눌만한 온갖 말들을 끼워 넣으며 우리는 촘촘히 소통한다. 그곳은 눈이 잦던 지난겨울 가장 따듯하고 싱싱한 공간 중 하나였다.
나의 천변 산책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어느 휴일 거기를 거닐어보았는데, 내게 전해 들은 고양이들이라고는 어디 숨었는지 통 보지 못했고 대신에 커다란 새들은 몇 마리 보았다고 했다. 광주가 고향인 그녀는 부모님 댁에 두고 온 자기 고양이 사진을 수시로 꺼내본다고 했다.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라는 시집을 화장실에 두고는 천천히 읽고 있다.
어제는 산책하다 강변에 이르자 저번에 본 냥이 중 한 마리가 나타나, 함께 놀았다.
무릎 위로 올라오기도 하는 녀석을 두고 일어나기 힘들었다.
다시 그루밍하는 사이를 틈타 슬금슬금 빠져나왔다.
반경 속 숨은 그림, 고양이들
3. 4.
언제나 모리의 곁에 머문다. 이런 식으로 아이 옆에 곡진히 머문 적이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모리는 내 생활 반경 속 하나의 숨은 그림으로서 늘 배경에 머물러왔다. 그림 속에서처럼 먹고 잠들고 소리 나지 않게 걸어다녔다.
녀석의 소심한 성격 탓만은 아니다. 나의 무심함, 인간적인 이기심과 자기 집중적 성향은 그저 일상의 한 여가처럼 고양이를 대해왔다. 손이 자주 가지 않아도 되는 고양이의 특성을 편히 누려가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시간이다. 처음으로.
돌아서면 사라져 있을까, 자주 돌아보게 된다. 같이 있는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느낌에, 같이 잠드는 시간에도 서로 손을 얹거나 꼭 붙든 채 잠든다.
모리의 질병 발견 그리고 연이은 선고와 더불어 시작된 날들은 네 마리 고양이와 함께 한 모든 날 중 유례가 없었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를 시간을 조마조마함을 늦추지 못한 채 긴장하고 집중하여야 하는 날들이 도래한 것이다. 내 감정이라는 집의 지반을 통째로 흔들어 버렸다. 모리라는 작은 고양이의 그 연약한 발은!
이렇게 되기 직전까지 나는 삶에서 막다른 권태에 내몰리고 있었다. 출구라곤 없이 반복되는, 카타르시스 없는 나날들. 희망도 관심사도 열정도 별 깜박거리지 않은 채로 이제는 남들처럼 죽음을 기다리며 죽어감을 헤아리는 일만 남은 건가? 어떻게 하면 그저 몸 관리나 잘하여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노화와 죽음을 맞을 것인가? 같은 생각을 매일 커피 마시듯 홀짝거리고 있었다. 특별히 부족한 것도 굳이 실현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런데 이, 별 고통이라곤 없는 날들 속에서 왜 막다른 느낌에 처박혀 세월만 보내는지? 이제야 난 그 뿌리가 짚이지 않으면서도 더 깊고 광범위하게 존재의 나날들을 점하곤 하는, 사람들의 무색투명한 고통을 알게 된 것도 같았다.
가장 애착했던 맏이 고양이의 죽음이 나의 감정 세계를 흔들어놓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러기에 그 이별은 너무 순식간이고 완전해서 내 마음을 오히려 다시 봉합해 버렸다.
하필 그 죽음은 형용하기 어렵게 완전했다. 그 짧은 과정 속에 같이 가 닿아가고 있었던 영원의 느낌을 어디다 꺼내 보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아이의 죽음을 당분간은 나만 소유하고 싶었다. 죽음이라는 공평무사한 사건을 두고서 내 친애하는 고양이에 대해서만큼은 이기적이 되어버렸었다. 그 죽음은 내게 너무 안쪽의 것이었다. 우선 한동안은 그 일을 품어 가지고 싶었다. 깊이 담은 걸 꺼내놓으면 혹여 변질이라도 될까 봐서.
그러다 계절이 하나 둘 셋 다 지나가기도 전에 더는 그러지 못할 계기가 찾아왔다. 다른 한 녀석. 내 막내 고양이 모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날, 나는 동물 병원 의사 선생님의 책상 앞에 피고처럼 놓여 모리의 선고를 들었다.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고양이를 대신하여, 당사자의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 담고 있었다.
병원에 오고 가던 길, 주말이라 차가 조금 밀렸다. 차창 너머로 새봄의 훈풍과 햇빛이 불어닥쳤다. 매해 거듭되는 초봄의 풍광이 새삼 이질적이었다. 앞으로 며칠, 몇 주, 몇 달을 더 살게 될지 모를 모리에게 이후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 새봄은 어느덧 살아 맞는 과거형이 되어 있을 수 있을까? 멈춰버린 현재로 정박될 것인가?
지난 겨울이 우리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풍경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다.
나를 걱정하는 이들이 고양이의 일을 물어오기라도 하면, 내가 이전 추억의 장면을 회상하여 설명하느라 과거형 어미를 사용하게 될 때마다 은근 맘에 걸린다. 문법적으로는 오류가 아니나, 지금 내 옆의 고양이를 마치 이전에 있었던 고양이 언급하듯 하는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다.
나눠 가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미안함처럼, 속죄의 감정을 내 몸으로 스며 빨아들이듯 아프다. 오늘은 내 몸이 아프다. 3월의 바람으로 둥지를 짓듯 관절이 서걱대고 시큰하다.
그저께 저녁 무렵부터 어제저녁까지는 좀 길고 고단한 하루였다.
그 안의 사건들은, 하나하나 해내기엔 시간이 빠듯해 보였고 장애까지 끼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완결되었다. 동물 병원까지 가는 금요일 저녁의 강변북로의 엄청난 혼잡은 중간의 사고에도 기인하는 것이었지만, 약속보다 10분이 늦은 병원 도착시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의 일을 다 마쳤고, 돌아오는 길 차의 기름은 아슬아슬했지만 집에까지는 왔고, 뭐 그런 식.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도 삶은 다른 쪽으로 국면이 변하기도 한다.
그저껜가 여기 막내 냥이 사진을 올릴 때만 하여도 아이의 건강 문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었지만, 그새 달라졌다. 어제 오후에 맡겨 조직 검사를 했는데, 그 조직은 외국으로 건너가 판독되어 오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
뭐가 어떻게 되건, 주어진 시간 동안, 서로 사랑하며 사는가가 관건이다. 여한이라 불리는 것은, 사랑을 사랑으로 주고받지 못한 소통 장애에만 남는다고 생각한다. 맏이 고양이가 떠나면서 가르쳐준 진실이었다.
3. 5.
셀로판지를 동그랗게 오려 눈에다 대고서 해를 바라보고 싶다.
잠시 짬을 내어 전시회에 다녀오기로 한다.
보통은 끝날 때쯤 가서 화가님과 같이 이동하여 식사를 한다든가 했었지만, 이번엔 가서 작품들을 둘러본 다음 곧바로 와야 한다. 요즘의 나날들은 모리의 밥 시간이 다른 어느 스케줄보다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주사기 세 개씩 하루에 다섯 번에 걸쳐 나눠 넣어주어야 한다.
화가님과는 다음의 좀 더 여유 있어질 나날의 긴 만남을 미뤄두고.
관을 통해 주사기로 먹이는 방법에 이제야 조금 적응했다. 오늘 아침에야 겨우 흘리지 않고 먹일 수 있었다. 매번 할 때마다 긴장이 되어 온몸이 뻣뻣해진다.
그저께는 산수유처럼 노란 것이 돋아난 것을 보았다. 산수유일 수도 있다.
어제는 매화 같은 꽃이 여기저기 피어났다. 아마 매화일 것이다.
오늘이 경칩이라 하니, 매화는 경칩 무렵 피는 꽃이라고, 많이 살아온 척 늙은 시늉을 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