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들어도 편안한 고양이 음악

by 래연




사람이 들어도 편안한 고양이 음악

3. 7.


목에 구멍을 내어 연결한 가는 관을 통해 액상으로 만든 사료를 주사기로 넣어주는 일을 처음에는 겁을 잔뜩 먹고서 식은땀을 흘려가며 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이 방식에 당사자인 냥이보다도 사람이 더 적응해야 했고, 이제는 적응했다. 몇 가지 요령이 필요했다. 한 손으로는 주사기를 조절하고 왼손으로는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어야 한다. 냥이의 몸이 과정을 받아들이려면 냥이가 잠을 자는 상태는 좋지 않다. 적당히 깨어있으면서 편한 상태라야 한다. 입을 몇 번 쩝쩝 딸싹이거나 하면, 그만큼 관에 고여 있던 액체가 쉽게 내려가게 된다.



모든 다른 일에서처럼, 잘 주고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상호 신뢰가 바탕이었다. 내가 주는 것들을 아이의 몸이 잘 받아들이고 있음을 믿고서, 가는 관을 통해 일정한 속도로 지그시 눌러주는 일.



한 사흘 전에는 부지불식간에, 혹시 고양이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음악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져 ‘고양이 치유 음악’이라고 유튜브에 검색하니 아주 많이 떴다. 이 곡들 중 적당하다 싶은 것들을 골라 돌아가면서 틀어주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밥을 먹이면, 냥이도 냥이지만 먹이는 나의 기분도 보듬어지며 보다 편안한 흐름을 탄다. 이 음악들은 사람이 들어도 편하다.






의사 선생님의 예고대로 병의 진행이 빠른 것 같다. 조직이 커져 밀리면서 아랫입술이 뒤집어져 가끔 침이 흐른다. 일주일 전에는 이러지 않았고, 불과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이다.

먹이는 양과 횟수를 늘려준 이후 모리가 평소 움직일 수 있는 체력은 좋아진 듯도 하지만, 병에 대해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언제까지고 배가 고프지 않게 도와주는 것만이 내가 겨우 해 줄 수 있는 만큼이다.



지난 일주일, 이 과정에 적응하느라 심신이 고달팠다. 마침 산수유와 매화가 피어나면서 동시에 꽃샘이 불고 있다. 이 시기에 나갈 땐 일기예보에 표시된 숫자대로의 기온만 믿으면 안 된다. 바람을 예상하여 목을 한 번 더 둘러 감아주어야 한다.



한 번에 이만큼씩 넣어준다

이 바람에는, 2월의 칼바람보다도 몸이 더 반응했다. 말 그대로 시샘을 품은 바람이어선가, 근육과 관절이 엉클어져 갑자기 쑤시고 아팠다. 여기저기 마사지용 크림을 되는대로 발랐다. 이러다 내가 병드는 게 아닌지, 아직은 살 날이 많은 인간의 몸을 걱정했다.



그러다 이내 볕이 제법 잘 드는 일요일에 닿았다.

일주일을 버텨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모리에게는 이런 일주일들이 몇 주머니나 남아있을지 가 얼핏 떠오르지 않을 수 없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같이 살뿐이다. 의심 없이 먹이고 쓰다듬는 일을 당분간 계속하게 될 거다. 지금의 이, 하지 않던 노고들을 다시 할 수 없게 될 때의 쓸데없고 허탈할지 모를 호젓함을 미리 돌아보면서.




모리를 돌보는 날들이 본격화되던 일주일 전, 내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주문했던 숨은 그림 찾기 책의 진도는 절반을 더 지났다. 과수원과 주말농장, 공룡의 세계, 놀이동산 등을 거쳐 동물농장 편에 이르렀다. 찾다 보면 약간 억지다 싶은 그림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꽃밭에 나비가, 나무 속에 새집같이 당연한 것들이 숨은 그림으로 등장한다던가.



하지만 자꾸 찾다 보면 어느 순간엔, 처음부터 말이 된다고 믿었던 여느 그림 조각들, 풍경들의 매무새조차 어차피 모두 숨은 그림이었음을 알게 된다.

모리도 오랫동안 내 방 속 숨은 그림이었고, 이제는 더 숨어 있을 수 없게끔 매일 새로 찾아 꺼내놓으며 색연필로 칠해놓는다. 그간의 무사안일한 모든 날들을 뒤로 하고서, 숨의 밀도를 끌어올려 모리와 함께 하는 이 날들에, 숨은 그림 찾기를 내 취미로 길들였다. 내가 살아있을 날들에 두고 두고 하게 될 것이다. 오래, 오래.





존재감을 빌려주는 고양이


사료 급식을 위해 구멍을 뚫고 관을 심는 일을 처음 듣자마자는 이질적 기분과 더불어 더럭 겁부터 났었다. 사람조차 입으로 씹어 삼키는 일이 커다란 삶의 낙으로 되어 있거늘 동물은 오죽할 것이며, 얼핏 생각하기에 관으로 먹는 것은 말 그대로 연명의 수단일 뿐, 그럼으로써 동물로서 누리는 일상이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조금만 설명을 들어봐도 이 상황에서 이 시술은 필수불가결해 보였다. 입 쪽이 문제인 고양이에게는 더더욱. 그리고 관을 통해 먹인다 해도 입으로 먹기를 병행해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안심이 되어, 시술을 안 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매일의 이 과정이 냥이의 생명력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급여를 할 때마다 관을 통해 생명을 흘려 넣어주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비록 서툰 솜씨로 실행하나마 조금씩 뿌듯해지곤 한다.

이 고양이에게 약간은 쓸모있는 존재로 기능하는 기분이 들기조차 한다. 자기 믿음이라곤 없이 늘 정처 없는 한 인간에게 나의 고양이는 아픈 와중에도 존재감을 빌려준다.



병이 발견된 것은 모리의 고향인 순천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철새가 도래하는 겨울을 기다려 1월 말경에는 순천에 흑두루미 떼를 보러 갔었다. 까만 양복이나 검은 후드 망토를 떨쳐입은 것 같은 흑두루미 무리는 장관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모리는 태어난 지 두 달 남짓 되어 나와 인연이 되었다. 동호회에 올라온 게시글에는 순천의 샴고양이를 그 어미와 함께 데려가는 것이 입양 조건으로 되어 있었다.

모리를 데리러 순천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부지불식간 아직 본 적 없는 고양이의 이름이 떠올랐다. ‘모리, 모리라고 해야겠어.’




처음엔 없던 포인트가 자라면서 진해졌다





순천의 작은 아파트, 모리와 그 엄마 아빠 냥이까지 고양이 일가는 모두 베란다에 모여 있었다. 주인이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다른 아가인 모리는 그 방에 머물러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고양이 일가는 그 집에 더는 머무르지 못할 형편이 되어 있었다.

모리의 어미인 별이는 아몬드 모양의 파란 눈을 갖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회갈색이 돌고 부분적으로 포인트가 있는 벵갈 종으로 정말 어여뻤다. 아빠 냥이는 레몬빛이 도는 페르시안 믹스였다. 주인 부부는 기왕이면 아빠까지도 데려가길 바랐고 나 또한 일가를 떼어놓고 싶지 않아서 결국 고양이 일가족 모두와 함께 대전으로 돌아왔다.


데려온 고양이 가족은 낯을 가렸다. 집에 풀어놓자마자 가까이 오기는커녕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특히 어린 모리는 적대감이 두드러졌다. 그렇게 작은 녀석이 언제 험한 세상을 겪었다고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하고는, 그저 옷걸이가 놓인 구석에 처박혀서는, 다가갈라치면 밀어낼세라 ‘하악’ 소리를 냈다.

얘네들이랑 어떻게 친해가야 할지, 데려다 놓은 고양이들이랑 당장은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밤이 왔다. 불을 끄고 누워 있다가 잠깐 깼을 때였다. 불을 켜보니, 모두 내 눈앞에 있었다. 일가족 세 마리가 내 머리맡에 고스란히 모여 웅크리고들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소심한 녀석들! 나와 이미 가족이 된 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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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모리의 첫인상을 잊지 못한다. 순천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모리를 처음 보던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들은 ‘샴이 맞기는 한가?’,‘제일 못생겨서 형제들이 모두 입양되도록 마지막까지 남은 게 아닐까?’‘잘못 걸렸다!’ 등이었다. 그 당시의 모리에게는 샴이라고 딱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얼굴 포인트라곤 전혀 없었다. 연한 갈색의 밋밋한 고양이 얼굴에는 눈만 가늘게 쭉 찢어져 있었다. 웬 한 마리 못생긴 고양이가 거기 있었다. 썩 맘에 들지는 않는 외모였고 요만큼의 귀여움도 아직은 전혀 발현되지 않아 보였다.



이러다가도 자라면서 과연 포인트가 생겨나기는 할까? 싶었지만, 기대는 좋은 쪽이든 그렇지 않은 쪽이든 간에 어쨌든 사람의 예상을 배신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법이다.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이 보태어지면서, 모리의 얼굴과 온몸에는 갈색 포인트가 나타나 점점 진해지더니, 진짜로 어엿한 샴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 마리 못생긴 새끼 고양이는 온데간데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크면서 예뻐진다는 말이 이런 것이었다. 쭉 찢어졌던 눈마저도 이상하게도 둥글고 커져서는, 완연한 미모의 몹시도 귀여운 한 마리 샴고양이로 어느새 탈바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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