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른손이 타인의 손 같다
7. 17.
내 눈물들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할까?
내가 발걸음을 옮기면, 유령의 손수건 같은 나뭇잎이 떨어진다.
식사 주문하듯이 비를 주문할 수 있다면 지금이 그러고 싶은 순간이다.
장마철을 걸어 지나가려면 아쿠아 슈즈가 필요할까?
모리가 떠나기 전엔, 모리가 가고 나면, 그동안 나들이를 못하고 살았으니 1박2일 여행이라도 갔다 올까 했었지만, 막상은 남은 로리를 돌봐야 했고, 마침 우기가 와 있기도 했고 다른 할 일도 있었다. 떠나지 못할 사정으로 포위되어 머물렀다.
작년 이맘 맏이가 떠났을 때 다른 두 마리는 예상외로 초연했었다. 그들의 태도는, 아직 우리들은 삶의 편에 있거든, 하고 말하는 듯했다. 맏이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가까이 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반면 모리가 아팠을 때 로리의 태도는 달라졌다. 매일 핥아줬었고 새삼 나란히 붙어 있기도 했고, 마지막 날엔 누워있는 시신 옆으로 다가가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모리가 떠난 날로부터 이틀 정도는 겁을 먹은 듯 침대에 붙어선 영 평소 같지 않았다. 이러고 보니 당분간은 로리가 좀 더 편안해지게끔 곁에 있으며 말을 걸어주고 자주 쓰다듬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가 이제 한 달이 되어간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내내 쓰기 중독이 되어버린 나를 버거워하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지난 한 달여는 무언가를 쓰기엔 참으로 바빠져 있었는데 이게 차라리 편하기도 했다. 무언가에 밀려 계속 쓰게 되는 것도 어딘가 고역이다. 허기를 계속하여 생산하는 일처럼. 멈출 수 없는 러닝 머신 같은 것이다. 러닝 머신 위에는 심장 내과에서 딱 한 번 올라가 보았을 뿐이지만.
대학 때는 일기조차도 쓰지 않았었고, 대학기부터 이후 인생의 잠적기에 이르는 13년 정도의 시간 동안엔 토탈, 일기 서너 페이지가 전부였다. 기록이라곤 하지 않은 그날들이야말로 지금 와 돌아보면, 푹 찌르면 붉은 단물이 죽 터져 나오는 수박 같은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일기라는 형식의 기록을 나도 모르게 다시 잡은 날들의 시작은 그러니까, 몰려들었던 일차 하객들이 우르르 돌아가면서 끝나버린 청춘의 잔칫상을 무른 바로 직후부터였던 것 같다. 여러 번의 중압이 겹쳐 나중엔 완전 짜부가 되어 일그러진 깡통처럼 울부짖으며 내 안의 결핍을 자꾸 꺼내 보이고 호소하게 되었던 것이.
오롯이 삶을 누리던 꽉 찬 날들엔 따로 기록이 없었다. 내게 기록이란 결핍이란 조건과 맞물려 있는지.
무언가를 묘사하는 단어 따위 떠올리지 않고 오롯이 삶을 맛보고 있는 순간들을 반긴다.
어제였나, 동네에 늘 있었지만 전혀 보이지 않던 간판이 몇 년 만에 갑자기 처음으로 보였다. 인식의 신장개업에는 언어들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많다.
오른손을 들어 왼 어깨에 올려보면, 내 오른손마저 타인의 손 같다. 따스하다. 왼 어깨가 나고, 오른손은 온기에 찬 뭇 인격들의 대표라도 되듯이.
내 안에도 나를 위로하는 응급반으로 파견된 누군가가 있다.
8. 15.
감정의 세계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리!
생각보다 나는 많이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감정에 대하여 약간 남의 일을 짐작하듯 이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아니 모두가 다 그러지는 않을 테니 가령 어떤 사람들은, 자기감정에 청진기를 달고 다니는 걸까? 어떻게 그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려 즉시 진단한 듯이 슬프다 어떻다 말하는 걸까? 이게 오래전부터 의아했다.
나는 마음에 녹슨 번역기가 하나 달려 있다가, 잠자다 가끔 일어나 갑자기 생각난 듯 말하다 다시 잠들곤 하니, 이러니 누구랑 대화를 하겠나 싶다.
대화하려 나름은 애쓰는 와중에, 그 낡은 번역기와 거의 작동하지 않는 청진기를 멋쩍은 듯 걸고 있을 뿐이야. 뿐이라는걸.
오늘 저녁 나는 생각보다 내가 많이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짐작을 해. 지난 몇 달간 말이야.
계절의 방문에 대하여, 얇은 종이에 '사절'이라고 적어 문 앞에 붙여라도 놓은 듯이. 죽을 병에 걸린 고양이를 간호하면서부터 나는 계절과 결별한 듯이 들어앉았어.
구름이나 달을 볼 때마다도, 다른 해의 나였다면 저런 것들을 이래저래 느꼈으리라 가늠해보는 사이, 올해의 구름이나 달은 저 멀리 가버리곤 했어.
이게 올해의 풍경이야.
계절은 계속 반송되었어.
고양이가 가고서도 계절은 다시 오고 있지 않아, 아직은.
내가 이렇다는 게 슬퍼. 모든 걸 나중에야 확인하고 혼자 읊조리는 마음의 생김새로 살아간다는 게.
하지만 바깥에 사는 어떤 누구의 당위로부터도 꼭 끌어안아 보호하고 싶은 어떤 세계가 있는 거야 내겐, 한편으로는.
슬픔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 의식과 무의식이 협잡해서인지, 이후 내 나날들은 바쁘게 흘러갔다. 애도에 잠겨 있지 않기 위해 일을 만들어 집중하며, 곧 다른 색깔의 나날이 나타나 지나갔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가끔 마음이 허했지만 딱히 슬프지는 않아서 그 이유를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중간에 번아웃 비슷한 상태도 왔지만, 그냥 집중을 많이 하고 신경을 많이 써서일 거라고만 여겼다.
그 일 년이 흐른 후, 이때의 일기를 꺼내 처음부터 읽어가면서 모리의 간호나 죽음에 임하여 연약한 내가 나를 보호하고자 임의로 누락시켜 버렸던 감정을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