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는 말: 아름다움은 회귀한다

by 래연


모리 어렸을때





에필로그


가장 소중한 존재인 반려묘, 반려동물과의 작별을 앞둔 모든 분에게 이왕이면 아이들과의 마지막 날들에 대하여 기록을 해보십사 권하고 싶다. 특히 아이가 병에 걸려 간병의 나날을 보내야 할 경우엔 특히 이 기록은 나중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이 기록을 이렇게 보여주고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애착하던 대상이 느닷없이 떠나고 나면 어쩌면 우리는 이 잔인한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여 속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에서 충분히 애도하지 않을 수 있다. 보통은 일이라던가 다른 관계들에 더 맘을 쏟으며 아픈 마음을 완화하고자 한다.

그런데 적당히 누락되거나 회피된 감정은 어디로 가 사라지지 않고서 어딘가에 고여 우리 심신 속에 예기치 않은 환부를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 환부에 대하여 또 다른 회피로 일관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삶은 겉으로만 유지될 뿐 안에서는 어딘가 이상해진다. 무감각해지거나 감정의 균형을 잃는다던가.



그러다가 애도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어느 날, 바로 그 순간에 이 기록은 큰 보탬이 된다. 아이가 보여준 마지막 시간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되짚으면서 당신은 깊은 애정이 이자까지 붙여 돌아오는 예상치 못한 감정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애틋함을 되찾으면서, 그 순간들을 다시 껴안으며 동시에, 힘겨운 마음으로 작별을 준비하던 바로 자기 자신을 껴안게 될 것이다. 그 힘든 당시에 내가 무력하지 않았다는 것, 노력하고 집중했었다는 것, 끝을 알고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신을 긍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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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자마자 곧장은 되찾을 수는 없는 것들을, 우리는 대개 잃음과 되찾음을 시차를 두고 해나가게 마련이니까. 그때에 이르러야 비로소, 작별한 아이들을 내 존재 속에 모두 품은 채 좀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작별한 아이들을 굳이 일부러 놓아보낼 필요는 없다. 그냥 내 안에 안으면 된다. 아이들이 살아 있을 때 그랬듯이.



떠난 다음에도 특히 르 고양이는 자주 꿈에 나타났다. 그 장면이 하도 생생해서 꿈속에서 반갑게 외쳤다. ‘거봐,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니까! 이렇게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잖아! 잃은 것도 사라진 것도 없어!’

깨고 나서도 ‘꿈일 뿐이었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꿈이었음을 알고도 그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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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엄마 별이와 갓난 동생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