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임이 아닌 적 없어

by 래연



2. 천변의 노란 고양이


노란 고양이는 내가 천변을 빠지지 않고 산책하게 된 개중 커다랗고 은은한 이유가 된 친구다. 마음을 나누던 이 천변의 노란 고양이를 6년간은 별다른 이름 없이 노란 고양이라고만 불렀다. 이름을 생각해도 이렇다 할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도 했다.


살면서 어느 고양이보다도 유달리 여겨온 이 아이는 천변에서 어느 고양이보다 오래 보인다. 올해로 7년째.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애잔한 표정. 처음 발견했을 때 녀석은 가로등 불빛 아래 비현실적으로 영롱하게 앉아 있었다. 세상 고양이가 아닌 것처럼. 하긴 모든 고양이가 세상 소속이 아니어 보이기는 하지만.






노란 고양이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자 다들 그냥 지나치지 않고서 한마디씩을 했다. 개중 많이 들은 이야기는 ‘슬퍼 보인다’는 거였다. 실제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고양이조차 그런 눈빛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이 고양이가 단 한 마디도 야옹 소리를 낸 적이 없다는 것도 작년에야 알아차렸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중성화의 징표인 한쪽 귀가 다른 녀석들보다 좀 더 많이 잘려져 있어 마음 아팠다. 어쩌다 귀가 이렇게 잘려야 했을까? 다시 찾아다 붙여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7년 동안 숨바꼭질을 했다. 이제 더는 못 보나보다 하면서도 기다림을 멈추지 못하는 날들에 불쑥 나타나곤 했고 한곳에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렇게 가끔씩 있던 자리를 바꾸며 옮겨 다니는 게 어쩌면 혹시 모를 가상의 가해자를 따돌리기 위함일까? 자기가 있는 곳을 일정하지 않게 바꾸어가며 관리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지금은 믿음직스럽고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안 보여도 잘 있겠거니 하고 믿어보는 것이다. 이 근처에는 밥 주는 분들도 많아 내가 아니어도 밥을 굶지는 않지 싶기도 하고.



재작년 유월, 맏이 고양이가 떠난지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한동안 사라져 보이지 않던 이 녀석이 갑자기 나타났다. 길가 돌 위에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즈음엔 입가에 침을 질질 흐르는 구내염을 앓고 있어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는데, 더는 그렇게 침이 흐르지 않았다.

맏이가 떠난 자리에 앉은 노란 고양이는 한동안 또 내 위로가 되었고 나는 또 매일의 임시 집사가 되어 밥을 주곤 했다. 그렇게 수개월, 반년 이상을 지내다간 또 사라지고 말았다.


작년에 모리가 간 직후에 천변을 걸으며 한 번 더 묘한 기대감이 일었다. 맏이가 떠난 자리에 나타나 내게 위로가 되었던 이 아이가 이번에도 혹시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모리 가고 열흘이나 보름을 넘기지 않아 맏이 때처럼 다시 나타나 또 매일, 거의 일 년 정도를 한곳에 머물렀다.






작년 말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눈이 펑펑 쏟아지는 이런 날에는 설마 나를 기다려 그 자리를 지키지 않겠지? 어딘가 아늑한 곳을 찾아들어 눈을 피하고 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료를 들고 나갔다.

그날, 늘 있던 그 자리, 펑펑 내리는 눈보라 속 아련한 한 마리 고양이, 내 쪽을 향하여 망부석이 된 것처럼 앉아, 다가오는 날 주시하고 있었다. 눈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우산을 씌워 밥을 먹여주었다.





















아이를 만난 지 7년째 되는 올해, 노란 바탕 엉덩이에 뚜렷한 하얀 무늬가 영락없이 숫자 ‘9’ 모양임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뭇 고양이의 몸에서 하트 무늬는 보았어도 숫자를 발견하다니, 그리고 아홉이라는 숫자라니! 고양이에겐 목숨이 아홉 개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고양이가 더욱 특별히 여겨졌다. 그동안 이름을 지어주고자 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가 처음으로 이름이 떠올랐다. 아홉 ‘구九’ 자를 넣어 '구찌'라 부르기로 했다.





요새도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거나 한다. 혹여 보이지 않아도 마음 졸이지 않고 믿기로 했다. 이 고양이는 시공을 넘은 삶을 가졌기에 그 생사를 인간이 감히 걱정할 바가 아니라고. 이 고양이뿐 아니라 실은 모든 고양이가 그렇고 우리 인간 또한 실은 다르지 않다고. 단지 인간은 고양이보다 좀 더 둔탁하고 덜 지혜롭고 미련이 많아 근심을 지으며 살아갈 뿐이라고. 그러니까 한 번 사랑을 준 대상들이 늘 내 반경 안에 있기만을 바라 쉬 맘 졸일 것이 아니라 더 잘 믿어야 한다고. 어디서건 다시 나타나고, 언젠간 다시 만나고,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임이 아닌 적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