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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Nov 03. 2022

어떨땐 분노하는 것이 더 잘 추모하는 것일 수 있다






추모란 말과 애석함의 감정이 남용을 넘어 우롱되고 있는 것 같다.

며칠 동안 떨떠름하기 그지없었다.

인간의 소중한 감정을 양 떼 몰듯이 하여 회피의 방편으로 삼다니

이용당할 바에야 애도의 감정을 앞세우고 싶지 않다.

지금 돌아가는 게,

"너네들은 오롯이 슬픈 게 전부여야 한다, 슬픔만이 앞서야 한다!"

요걸로 덮으려는 거잖은가!!


석연찮기 그지없어

애도의 글이라던지 국화꽃 사진 올리는 것조차 저어될 지경이다.



정부에 제대로 된 장례를 치렀으면!!



더불어 이런 시국에선

"분노"라는 감정에 무게를 더 두었으면 한다.

슬픔이란 이름처럼 그렇게 청순하지만은 않다.

분노가 종종 슬픔의 탈을 쓰는데,

문화권 안에서 분노는 덜 받아들여지고 지양되는 감정이고

슬픔은 공공연히 허용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모든 감정은 이유를 지니며

때론 분노도 슬픔만큼이나 그 이상 타당하다.

슬퍼할 줄 아는 인간보다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이

더 인간다울 수도 있다.


어떨땐 분노하는 것이 더 잘 추모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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