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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이란 가능하지도 않아

by 래연





언젠가부터 들려온 말.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살라는 말은 무언가,


듣는 순간 선뜻 접수되지만은 않았다.




타인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것은 피하라는 의미까지는


수긍이 가지만, 그것을 넘어


개인이란 위상을 그 자체로 완결될 수 있는 무엇처럼


그런 이상한 개념화가 끼어들어온 듯한데 여기엔 저항이 인다.




자기의 행복을 위한다고 쳐도


그 속에는 필연적으로


남의 행복 혹은 남과의 행복이란 부분이


도저히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관계의 연결로 인한 감정의 충만이란 요소는


행복감 가운데서도 매우 본질적이고 큰 무엇인 것 같은데


앞도 뒤도 없이


자기를 위해 살라는 건 무언가 부실한 말 같아 보인다.




실제 자기에게 집중된 삶이란


고인 물이 맴돌다 갖은 찌꺼기들과 섞여버리거나


감각의 쾌락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누리다


금세 피폐해지거나


하여간 어떤 한계가 느껴진다.




혼자가 혼자로서는 너무도 뻔한 것이다.


섞여서 서로의 에너지가 증폭되고 확장되지 않으면


개체들이란 쪼그라들기가 너무도 쉽다.






어쩌면 관계가 상당히 행복의 토대이긴 하지만


타자의 리액션은 내 맘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고


예측하기 힘든 변수도 많고 위험도 많이 따르다 보니


잦은 실망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사람을 믿지 않아!'라고 말하게 되고 그런 것 같긴 하다.




이해가 가는 맥락이다.




하지만 어쩐 배경에서부터 였는지


언젠가부터


개인이 각자 자기의 삶을 구가해야 한다는 게


무슨 강령처럼 되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듯하다.




이 강령이 메가폰으로부터 크게 확대되어 들리고


메아리쳐 돌아다니는 사이,


이러는 동안 현실 속에선 우울증과 자살이 더욱 만연해졌다.






1인분 삶이 호젓해 보이기는 하지만


1인분 삶이라는 거 자체가 가능한지조차 모르겠고


그 호젓은 곧 지나친 호젓으로 빠져


사람의 마음이 건강치 못하게 되기가 아주 쉽다.


혼자 있어본들


삶의 환경은 개인을 꿈꾸던 고요 속에만 머물게 가만두지도 않는다.


가치는 뒤범벅이지 세상의 속도는 무섭지


가만있는 게 평온이 아니라 도태처럼 여겨지는 그런 흐름인지 오래.






관계로부터의 상처를 어떻게든 피해보거나


혹은 손해라곤 보지 않는 법이 아니라


제대로 관계하고 소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다.




SNS에 떠도는, 처세에 대한 숱한 글귀들의 태반이


상처입지 않는 법과 손해 보지 않는 법


그러기 위해서 사람 가리는 법 등등을 나날이 더욱더 설파하고 있다.


진취적이지 못한 마이너스의 삶의 모습들 같다.




사실 대상들의 중요성이란,


대상이 없으면 나도 없는 그런 공식까지도 성립될 만큼 본질적인 것 같다.


자아란 다른 존재들이 없으면 무력하게 쪼그라들게 마련인데


자본주의의 환영은,


자신이 능력만 있다면 자신이 만든 성의 주인이 되어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삶을 통제하며


그럴듯한 삶의 모습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사람들을 꼬시고 있다.




쿨하지도 존경스럽지도 않은 허상의 창조와 그것의 추종,


허하고 거짓되기 짝이 없어!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흐를 때만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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