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십 년 이십 년 어린 분들에게
그 옛날 노래들을 알려줄 때
신선한 기쁨이 있다.
마치 내가 살던 시절은
지금은 닿지 않은 전설의 시대 이기라도 했듯이.
이전의 삶의 에스프리는 이런 것이었어,
이런 말을 속으로 하면서
내가 먼 나라에서 온 문화의 전달자라도 되는 양
뿌듯해지는 것이다.
최근엔
정훈희의 '안개'를 알려준 적이 있는데
실은 이 안개라는 곡은
정훈희가 젊었었고 내가 어렸을 때
알지 못하던 곡이었다.
단지 정훈희의 톤을 너무도 좋아했었다.
국내 여가수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일 만큼.
https://youtu.be/a6KbaDqEsrM?si=0hcTwv1s_E_TJdIN
추억의 안개 너머로,
삶이 큰 폭으로
그 무대 자체가 바뀌어
새로 들어온 장면 속에 낯설어 표류할 때
들려오던 곡들이 어젯밤 떠올랐다.
실제 세계와 마음 세계 안팎으로
감옥에 수감되는 듯한 힘든 연애를 시작할 무렵
연애의 대상이 사는 도시에 뚝 떨어져 있었다.
운명의 불시착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비호의적인 미지에는
거부하기 힘든 인력이 있었다.
싫어도 뿌리치지 못하고
일단 맞아들어 걸어야 하는 구간인 것 같다,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그 끝장을 본답시고
나는 나의 과거와 결별을 해버렸다.
이 참의 결별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맘에 안 들어, 좋든 나쁘든 어떤 기회가 주어지면
어차피 버릴 것이었다.
과거에 속한 세계 중에 소속감이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모두 다 연극 속에서였던 것처럼.
연극 속은 리얼에 가까운 감정이입이라도 있지,
내 건 온통 뿌리치고 싶은 것들 투성이였다.
그렇다고 새로 맞은 현재는
더욱 불확실하고 나를 후려칠 수도 있는 폭풍우였으니
이때의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떠있는 섬.
그런데 난생처음의 그 표류의 느낌을
나는 은근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내 것인 삶을 만지기 시작했다는 듯이
몸을 감싸오는 안개의 느낌에 매료되었다.
그때 과기원 쪽문(후문이란 말보다 이 쪽문이라는 표현이 아주 맘에 들었던) 가까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작은 카페가 있었고
한동안 매일 갈 때마다
익숙한 듯 알지 못하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그 주인공이 아이린 카라라는 것은
이후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 노래가 당시엔 운명의 서곡처럼 귀에 걸어들어왔다.
때는 여름이었다.
https://youtu.be/-uiQudTTDuE?si=VJqEmtQ_pr_1fv5d
두 번째 곡.
새로 열린 운명은
오래가지 않아 난파의 형태로 파국을 맞았다.
오래가지 않은 시간의 경과 속에
나는 모든 세기가 한꺼번에 지나는 듯한
신선한 혼란을 맛봤고
이런 시간 동안 전에 없이 감각은 극대화되어 충일 해졌다.
그때 나는
파국의 배경이 된 이 도시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 도시에 내 뿌리가 깊이 빠져 박혀버린 듯이.
파국으로 인해 속속들이 거덜 난 나는
그 자리에서 폐인이 되어갔다.
곧 낮밤이 바뀌어 있었다.
자고 나면 오후 너 다섯 시.
느지막이 인근 백화점 갤러리아 타임월드에 가서
그 지하나 고층에서 혼자 첫 끼니를 먹었다.
그러고 나올 때마다 등 뒤로 울려 퍼지던 노래는
메리 홉킨의 굿바이~ 굿바이~
그런 생활이 시작된 기간이 11월이어선가
이 BGM은 내게
초겨울 저녁의 입김이 서린 곡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젯밤 이 곡이 떠오른 것도 역시
지금 이 계절의 일이어서였을까?
시간의 지우개 때를 밀어내 뭉치면
만들어지는 작은 형체들.
요즘의 내 BGM을 나중에 우연히 듣게 되면
지금은 어떤 그림 혹은 그림자로 떠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