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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있다

by 래연





속내 이야기도 좀 하고 싶어지는 게

친구 사이에는 혹은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은 관계에는 그런 법이다.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살아보면

이게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이게 그래도 좋은지에 대한 의문 정도가 아니라

거의 그러면 안 되는 것 쪽으로 나 자신에게 설득이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수많은 대화와 교감이 있었다 여겼고

세계관이 같은 방향이라 여긴 경우

당연히 그걸 믿고서 어느 날

자기 처지에 대해서 혹은 세태에 대하여

마음속에서의 그대로의 의견을 털어놓았다가

파탄이 나거나 한다.



미묘한 데서 사람 마음의 결은 엇갈리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관계란 거의 없다.

나와 가장 친한 절친이 저 마음의 결이 착착 잘 맞았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내다 보면 그 순간 서로가 처한 입지에 따라서라던가 해서

어떤 말에 건드려져 앙금으로 작용해

푸는 데 시간이 걸렸다.

푸는 게 가능했던 것은

애초에 형성된 믿음이나 고마움이 커서였고

풀지 못하고 끝이 나는 관계들이 부지기수다.


끝이 나는 관계들이란

~~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실망과 경멸을 몰고 온 경우다.


상대방에 대해 직언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지 못하는 성격이다.

속에서 정말 가까워졌다 싶지 않으면 안 하지만

저 가까워졌다 싶다는 느낌 자체가 많이 환상임을

스스로에게 많이 말해두게 되었다.

직언은 안 하지만 어쩌다 솔직한 멘트 비슷하게만 가도

뭔가 싸해지는 분위기가 되곤 했다.


아무튼 속내는 좀 안 보여주는 게 낫다.

겨우 터득한 처세술이다.


근래 아주 잘 맞고

이거 참 대단한 인연이다 싶은 사람도 있지만

그럴수록 바닥까지 솔직하고 싶은 욕망은

아주 자제하기로 한다.

소중히 여기니까 그래야 함을 여실히 알겠다.


심지어 상대방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조차

오히려 그런 때일수록

해주고 싶은 조언 같은 거 끝끝내 참는 게 낫다.

해줘서 보탬이 되는 경우보다

오해로 접어드는 길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 길로 접어들었다가 가시에 찔려

다시 넉넉하고 편한 길에서 못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친한 사이일수록

세상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가급적 많이 나누지 않는 게 낫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너무나도 부정적이고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두고 그 현상을 일일이 말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지면서

마음에 수많은 안 좋은 것이 쌓인다.


무언가 오피니언을 나누어서 인식을 새로이 하거나

방법론을 찾고 힘을 얻는

이런 과정이 동반되지 않고

단지 나쁜 걸 나쁘다고 말하는 걸

친하다 싶은 사이에 수없이 반복한다면

이 나쁜 에너지까지 결부되어

관계의 결론이 무척 별로이게 될 수가 있다.


세상 이야기를 한답시고 실은

자신의 열등감과 결핍 박탈감 시기와 질투 따위를 투영하면서

이런 게 대화의 내용이 된 걸 가지고

같은 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착각하기도 쉽다.


부정적 현실에 대한 부정을 대화로 삼을 때는

서로 등이나 속을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도 어차피 항상

나날을 꾸려가기 위한 에너지는 필요한데

서로의 에너지를 끌어내리는 대화는

너무 풀어헤치지 않는 게 낫다.


이런 거 남들은 다 이미 알고 하는 거 같은데

나는 참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그만큼 감추는 거에 드는 에너지도 만만치가 않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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